건널 수 없는 새벽

바람이 부는 구나 다시
건널 수 없는 새벽이구나 곧
무슨 일이 닥쳐오겠구나 마음은
그러나 아무리 각오해도 각오하지 못한다 그때
단호하게 잘려나간 몇 장의 음화는
누구의 오래된 기억에 버려져 있을까 나는
너무 많이 흘러왔으며 바람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세상은
커다란 원룸이었다 곧 무슨 일이 닥
쳐!

귀 가

─ 이 영 광

나는 아니야, 하지만
너도 아니니까 잘 가
우리 다시는 마음 열지 말자

을지로에서 한 잔 종로에서 두 잔
마시고 욕하고 외면한 다음
여기 안암로터리
돌아서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이
그도 결국 혼자였음을 알려준다

넌 이제 아무도 없는 곳으로 걸어 들어가
문을 잠그겠지
홀몸이므로
얼마나 오래 불타야 할까

이봐, 홀몸이란
자기 속으로 숨어버리는 몸 아닌가
숨을 곳을 찾는 몸 아닌가

이봐, 몸을 떠난 내 목소리 안 들려?
몸이 떠나버린 혼잣말 안 들려?

나 또한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돌아서면서
나의 집, 그 텅 빈 응급실에
병 걸린 사람처럼 눕기 위해
돌아가면서

─창비시선 226 <<직선 위에서 떨다>>

비 오는 토요일, 따위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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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흐리고
풀이 눕거나 말거나
아아, 존재는 지상의 끈에 묶여 날아오르지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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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오는 데
만두는 맛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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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베란다에서 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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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베란다에서 삿대질하고

그런데
엄마랑 누나는 대체 어딜 간 것이냐?

엄마는 누나를 혼내러 간다고 나갔다.

……
……
……

그러나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게 거짓뿌렁이라는 거
엄마가 누나만 데리고 문방구 갔다는 거
문방구 가서 누나만 ‘아바타 스티커’ 사줄 거라는 거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엄마랑 누나가 지난 여름에 뭐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