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착란에 가까운 정신

소설집 하나 사놓고 야금야금 읽고 있다. 맛나다. 무슨 책인지는 말해주지 않겠다. 머리를 잘랐다. 6개월 이상 자란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동안 미용실 원장과 자녀교육에 대해서 얘길 나누었다. 덧없다. 아내가 처녀 적에 직장생활하며 받은, 내가 강가를 누비던 삼천리 자전거를 누가 훔쳐갔다.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고물이었는데 막상 잃어버리니 아깝다. 관리사무실에 가서 CCTV에 기록된 영상이라도 확인해 보려다가 귀찮아서 참았다. 막내는 가벼운 감기에 걸렸고 맏딸은 코피를 쏟았다. 엽이는 ‘밤낮으로 노력하였습니다’를 ‘밤났으로 로력하였습니다’로 썼다. 아내는 문상하러 가고, 아이들을 재웠다. 재우기 전에 아르키메데스가 3.141592어쩌구저쩌구, 하는 숫자를 어떻게 규명해냈는지 책을 읽어주었다. “아빠, 수학 얘기 또 해줘.” 나우가 말했다. “자라.” 내가 말했다. 아니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내 헤어스타일을 본 아내가 웃었다. “컨트리 스타일?” 내가 물었다. “노, 어번 스타일!” 아내가 대답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는 앞에서 언급한 책이 아니다. 아버지의 버어니어 캘리퍼스와 미제 제네릭 아스피린 약병과 받아야할 물품의 송장번호가 적혀 있는 메모지가 놓여 있는 책상……그리고 북스탠드에 기대 서서 도통 넘어갈 줄 모르는 페이지, 페이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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