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서와 사유서

1.

한 때, 술을 아주 많이 마시던 시절에 지갑을 자주 잃어버렸다. 그때 마다 운전면허증재발급 신청을 했다. 면허증이 재발급되는 기간 동안은 임시운전면허증이라는 ‘종이 조각’을 지갑속에 넣고 다녀야 했다. 새 면허증이 나오면 그 ‘종이 조각’을 반납하고 새 면허증을 받게 되는데 한번은 그 임시운전면허증까지 잃어버렸다.

아무튼 면허증찾으러 오라는 날짜가 되어 경찰서엘 갔다. 면허증을 내주는 사람이 임시운전면허증을 달라길래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 이었다. 임시운전면허증을 잃어버리면 새 면허증을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나더러 ‘진술서’를 쓰라고 했다. ‘진술서’라는 말에 나는 폭발했다. 이랬다.

니가 보기에는 내가 범죄자로 보이느냐? 물론 임시면허증을 잃어버린 것은 내 불찰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정도 일로 진술서를 쓰라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

하면서 따졌다. 하다못해 나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금낸다는 구차한 소리까지 했었다. 그래도 그렇지 경찰서에서 경찰들을 상대로 언쟁을 벌이다니…결국 나는 ‘진술서’ 쓰기는 끝까지 거부하고, 면허증을 받기는 받아야 했으므로 대신 ‘사유서’라는 제목으로

‘본인은 니덜이 발급해준 임시운전면허증을 잃어버렸다. 미안타’

하고 써준다음에 면허증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도 나는 면허증을 한 번 더 잃어버려 그 경찰서엘 다시 가야했다. 그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들이 날 알아보지 않기를 나는 빌었고, 그들은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2.

몇 개월 전 5살 먹은 엽,이를 무슨 유아 스포츠 센타에 보내기로 하고 덜컥 입학금과 교재비 등을 냈다. 물론 내가 낸 거 아니다. 아내가 냈다. 몇 개월 지나고 맘이 바뀌어 그냥 보내던 곳에 보내기로 했다.

이미 낸 입학금이 아까워 돌려받으려 했더니, 다는 못돌려주고 일부만 돌려준단다. 그나마 그 일부를 돌려주는데 ‘사유서’를 내야한다고 아내가 그랬다. A4용지에 쓴 걸루. 나는 또 폭발했다. 사유서라니!

‘니덜이 그 이유를 알아서 뭐하게?’ 나는 죄없는 아내에게 씩씩거렸다. 가령, 내가 영어회화학원 다니려고 등록했다가, 다니기 싫으면 안다니는 거지 학원에 ‘사유서’ 같은 걸 내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모른다. 아내가 ‘사유서’라는 걸 써주고 일부를 받아왔는지는 잘 모른다.
아무튼 따지러 갈까 말까 고민중이다.

Posted in 블루 노트.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