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동네 야산을 오르는데
해드랜턴 불빛 속으로 나방 한 마리 불쑥
날아 든다 또 그대인가 순간
나는 놀란다 이것이 헛것이다
12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딸아이 단원평가 수학 시험지를 확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
그리고 권총 하나 장만해 두어야겠다는 생각
숲에는 처녀 귀신도 없고
숲에는 정령도 없고
나는 참고인인가 피의자인가
세상은 왜 나를 소환했는가
중환자실에서 잠시 의식이 돌아온 노인은
시집간 딸의 손에
나 간다
고 힘겹게 쓰고 갔다
저녁 먹고 동네 야산이나 오르다가
그러니까 이렇게 살다가
나도 그런 식으로 갈 것이다
저기가 비오는 밤 고슴도치를 암매장하고
소주를 부어준 곳이다
내 의식에는 저기 같은 곳이 곳곳에 있다
해드랜턴을 끈다
따위님, 낼(오늘) 강남에서
소주 한 잔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