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서울 남영동에는 극장이 두 개 있었는데,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하나는 이름이 성남극장이었(을 것이)다. 거기 가서 이소룡 나오는 영화를, 아니 영화 자체를 처음 보았다. 나는 그 허무맹랑한 영화가 여태 정무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이소룡 평전에 나온 줄거리를 보니 그 영화는 당산대형이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얼음공장 내에서의 결투 장면이다.

또 하나의 극장은 숙대입구 쪽으로 난 굴다리 근처에 있었는데 이름은 잊었다. 그 극장 앞에서 데미안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그 극장 앞에서 박정희가 죽었다는 호외를 읽었고, 그 극장 앞에서 둘리스 내한 공연 팜플렛을 봤고, 그 극장 앞에서 두 번째 B자를 이상하게 쓴 ABBA의 포스터를 봤고, 그 극장 앞에서 아침마다 중학교 가는 버스를 탔다. 그 극장 앞에서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뺀지 같은 걸 맞았어봐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그래 보질 못했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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