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저속한 형식은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반복이다: 내용, 이데올로기의 음모, 모순들을 흐리게 하는 것, 이들은 반복되나, 외형적 형식들은 다양하다: 항상 새로운 책들, 새 프로그램들, 새 영화들, 새 항목들, 그러나 항상 똑같은 의미.
안 웃긴 것도 반복하면 웃긴다. 그러니 남을 웃기고자 하는 사람은 뭐든지 반복하면 된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가령, 같은 말을 반복하라. 아무 말이나 마음에 드는 말을 하나 고르고 그 말을 일주일동안 계속해서 상용해 보라. 가령,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을까?’ 이 말을 반복해보라.
__친구야, 점심시간이다. 밥 먹으러 가자.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을까?
__학생여러분! 다음 주까지 ‘웃을 때 인간의 신체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A4용지 다섯 장 분량으로 보고서를 제출하세요. 손으로 쓴 것만 받겠습니다.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을까요?
__눈 온다. 술 먹자.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을까?
__박팀장! 기획서 준비 다 되었으면 대회의실에서 다 같이 보자구.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을까?
__아빠, 오늘 개그콘서트 하는 날이야? 그런데 무궁화 꽃은 왜 피었어?
비슷비슷한 소리를 반복하면 웃긴다. 가령,
― 오호라. 그러니까 그게 이렇게 된 거군. 그러니까 니 말은 목동이 스테파네트 아가씨한테 연정을 품었는데,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영국의 권위 있는 귀족 순수한 혈통 루이 윌리암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 도령한테 맘을 빼앗겨가지고 목동을 거들떠도 안보니까, 목동이 이에 앙심을 품고 스테파네트 아가씨네 양들을 전부 팔아먹고 도망갔다 이거 아냐.
― 그게 아니라니까 거참 말 못 알아듣네. 그게 아니고, 목동이 스테파네트 아가씨한테 연정을 품은 것까지는 맞는데, 사실은 스테파네트 아가씨도 목동이 맘에는 드는데, 목동이 워낙 가진 게 없고, 직업도 별로고, 또 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하니까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영국의 권위 있는 귀족 순수한 혈통 루이 윌리암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 도령이 대시를 해버린 거라니까.
― 오호라. 그러니까 그게 이렇게 된 거군. 그러니까 니 말은 영국의 권위 있는 귀족 순수한 혈통 루이 윌리암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 도령이 스테파네트 아가씨한테 연정을 품었는데,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목동을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둘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목동이 돌보던 양들을 다 사가지고 목동이 실직을 하게 해서 목동을 멀리 쫓아버리려 했다는 거 아냐.
― 그게 아니라니까 거참 말 못 알아듣네. 그게 아니고, 목동이 양을 돌보는 데 영국의 권위 있는 귀족 순수한 혈통 루이 윌리암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 도령네 사냥개가 목동의 양을 물었는데…….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재미없으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라. 뭐, 코를 후비시든지, 지하철 플랫폼에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갈 때는 꼭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처럼 뛰어서 올라가시든지, 전화기를 집을 때 꼭 왼손으로 집은 다음 오른 손으로 옮겨 잡고 통화를 하시든지, 아무튼 뭐든지 습관적으로 반복하면 된다.
다만, 몇 번했는데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별 반응이 없으면, 혹은 당신의 그 심오하고 원대하고 웅대한 깊은 뜻을 알아주지 않으면, 괜히 성질부리지 말고 그 행동은 그만 두고 다른 걸 개발하는 것이 좋다. 옛 성현 말씀에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아야 군자라고 했다. 인부지불온이면불역군자호아! 웃기지 못하는 건 내 책임이고 웃지 않는 건 그들의 특권이다.
세상에 반복할 건 많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오늘은 내일의 어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오늘의 걱정은 오늘로 족하며, 내일이면 내일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태어난 아이들은 자라나고, 자라난 아이들은 해마다 어린이날이 되면 ‘앞으로 앞으로 자꾸 걸어 나가’서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온 다음에 지구를 지킨다.
도대체 외계인은 왜 안 쳐들어오는 것일까? 언제나 나는 출동할 수 있을까
왜 맨 날 지구를 지키냐?
지구는 그만 지켜도 된다.
지구 누가 안 훔쳐간다.
그러니까….이게 잘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무엇을 반복할지…따위님이 제시한…저런 남에게 피해 안주는 ‘순수행동’이야 시비 걸 게 없지만…난 결국 이상한 문장를 반복하여 언제나 상대방의 짜증을 유발한다…일테면 이런 대사…”근데 넌 왜 애인이 없지? 그렇게 잘 아는 애가…” 대화 중간중간 집요하게 반복한다….혹은 다른 대사…”야 그래서 니가 애인이 없구나…” 이것 또한 대화 중간중간 집요하게…이렇게 10번쯤 반복해주면…상대편, 급기야 짜증을 낸다…초반에는 웃으면서 잘 받아넘기던 그녀들이…결국은 못 참고 화 내는 모습을 보면서…난 웃는다…내가 넘 잔인한가?
근데 넌 왜 애인이 없지, 야 그래서 니가 애인이 없구나…,와 같은 문장의 반복은 일종의 공격이겠습지. 미리 얘기해서 김을 빼자면 ‘공격하면 웃긴다’ 편이 준비 되어 있습지. 기대하십지. 재밌습지. 또 보십지.
p.s. 열심히 출석해줘서 고맙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