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겨울 여주는 너무 추웠다. 영하 25도로 기온이 떨어진 어느 날 밤, 평소대로 밖에서 자던 동네 똥개 몇 마리가 조용히 얼어 죽었다. 미안하다. 내가 니 생각을 미처 못했구나. 웅크리고, 웅크리고, 웅크리다, 죽어 갔을, 자신이 밥 먹여 키우던 개의 싸늘한 몸뚱이를 보며 개주인들은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2.
엠본부에 아직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 살아 있는지 모르겠다. 텔레비전을 안 보고 산지가 제법 돼서 저런 세상사에 어둡다. 덕분에 우리집 ‘자제분들’도 대중문화생활을 거의 못하고 있다. 이 점은 애비로서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텔레비전 보는 것,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아무려나 <이제는 말 할 수 있다>라는 제목을 접할 때마다 그때는 왜 말 못했는데? 이제는 말해도 안전하다 이거지? 그런데 지금은 속 시원하게 말하는 거 맞아? 겸손하게, <이제야 겨우, 그것도 모기 소리 만하게, 말한다>로 타이틀을 바꾸는 게 어때? 하면서, 오래된 표현으로, 마음이 한 없이 삐딱선을 탔던 기억이 있다.

죽지 않고 버티면 언젠가 <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조금은 자조적인 제목으로 방송이 오늘의 여러 사태를 말 할 수 있는 날이 오려는가?

3.
……

Posted in 블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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