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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셋을 데리고 식당엘 가면 사람들이 흘낏흘낏 쳐다봅니다. 딱 두 종류의 시선이죠. 저집 엄청 부자인가보다 혹은 참 안됐다! 웬만한 시선은 그러려니 합니다. 한 번은 뒷 테이블에서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하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제가 심기가 불편해져서 아주 대놓고 쏘아보아준 적도 있습니다. “뭘보냐? 사람 처음 보냐? 니가 나 애 셋 낳는데 정액 한 방울 보태준 거 있냐?” 뭐 이런 식이었죠.

저날은 최악이었습니다. 최선의 날도 물론 있었어요. 연세 좀 넉넉히 자신 노인네 부부가 자기들 드시려고 주문한 파전 한 판을 반으로 뚝 잘라 넘겨주시더군요. 애들이 귀엽다고 말입니다. 고맙지요. 없는 살림에 파전 반 판! 그게 어딥니까?

아무려나 어제 저녁에도 외식을 했습니다. 저희 패밀리 외식 메뉴는 딱 두 종류입니다. 칼국수 혹은 뼈다귀해장국! 오늘 메뉴는 뼈다귀해장국이었습니다. ‘원당헌’이라고 잘 하는 집 있습지요. 뼈다귀 싹싹 발라 맛있게 잘 먹고, 아이들은 또 자판기에서 코코아 한 잔씩 뽑아 주고, 집에 와서 나우와 기엽이는 또 컴퓨터 하겠다고 달겨들어 컴퓨터 켜주고, 기언이는 졸려하여 재웠습니다. 물론 아내가 재웠습니다.

저는 귀찮기는 하지만 싸나이 뜻한 바가 있어 운동을 하러 갔습니다. 한 바퀴에 700m 씩이나 되는 트랙을 무려 다섯 바퀴나 돌았습니다.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요. 뛰면, 아 이제 내가 여기서 쓰러지는구나, 하는 한계지점에 곧 도착하니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걷지요. 걸으면, 기왕 하는 건데 인텐시브하게 해야 ‘뜻’이 이루어지지 않겠어, 하는 심정에 다시 뛰지요.

네 바퀴 반을 그렇게 돌고 한 지점에 멈추어서서 마무리 운동에 들어갑니다. 팔굽혀펴기 수십회, 양팔 크게 벌려 앞으로 회전시키기 수십회, 양팔 크게 벌려 뒤로 회전시키기 수십회, 중에서 10회 쯤 했는데…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습니다. 아 누가 술 사준다고 나오라고 하는 구나, 하고 냉큼 받았습니다. 웬 걸. 아내였습니다.

__지금 빨리 집에 와 줄 수 있어?
__엉, 왜?
__나 턱 밑에가 찢어졌어.
__뭐? 알았어. 당장 갈게.

하고는 집에 까지 냅다 뛰어왔습니다. 뛰면서 어느 놈 때문일까, 많이 다쳤나, 응급실엘 가야하나, 애들만 집에 남겨 둘 수도 없고 노인네를 오시라고 할까 고모에게 부탁할까, 오만가지 잡생각을 하면서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 상처를 살펴보았습니다. 사진과 같습니다. 아 오해마십시요. 저건 원래는 아내 보여주려고 찍은 겁니다. 여기 올리려고 찍은 거 아닙니다. 아무튼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애들을 부탁하고 부랴부랴 병원 응급실엘 갔습니다.

불철주야 격무에 시달리시는 병원응급실 관계자 분들 피로를 잠시 잊으시라고 너스레를 좀 떨었습니다. “저기, 수술 하려면 전신마취해야하나요?” “우리 부부가 원래는 부부싸움 같은 거 잘 안하는데…” “저, 제 아내가 곧 탤런트 될거거든요. 즉 얼굴로 먹고 살아야하니 흉터 안 남게 해주세요.” “떨지마. 내가 옆에서 손 꼭잡고 있을게”

무려 7바늘 꿰맸습니다.

응급실의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이 묻더군요. 어쩌다가 다쳤느냐고 말입니다. 어쩌다 다쳤을까요? 저도 그게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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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인즉 이렇습니다. 아 글쎄, 저희 싸모님께서 몸짱 되시겠다고 수십년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던 AB 슬라이더를 하시다가 그만 슬라이딩을 하신 거 였습니다.

지금 큰 수술 받으시느라 고생하신 싸모님 주무십니다. 애들도 곤히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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