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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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고집스럽게 계단을 오르(겠다)는 손주 녀석을 뒤를 살피며, 어머니는 녀석의 아비되는 자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신다. 어머니 보시기에 둘은 닮았다. “어쩌면 그렇게 똑 같니?” 하신다.

그러나 대물림되는 것이 어디 고집뿐이랴. 가끔은 내 대에서 제발 끊어버렸으면 하는 형질이 아이들 속에 살아 숨쉬는 걸 본다. 그럴 땐 내가 나 자신을 ‘증오’했던 만큼 아이도 미울 때가 있다. 나는 무겁고 어두운 의식을 품고 살았다. ‘더러운’ 성격하며.

한편, 나에게는 결핍되었던 형질이 아이들 속에 구현되어 있는 것도 있다. 가령, 음정과 박자를 맞추어서 노래를 부른다든가 나무를 보고 나무를 그렸는데 그게 나무처럼 보인다든가 하는 거. 아내를 닮은 것이다.

어떤 아이도 제 부모를 골라 태어나지 않듯이, 어떤 부모도 제 자식을 가려 태어나게 하지 못한다. 그건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아내는 사랑해서 만났다. 내 부모와 나는, 나와 내 자식은, 어쩌다 만난 것일까?

Posted in 애 셋.

0 Comments

  1. 내가 얼핏 들은 사이비 윤회론에 의하면…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전생에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라고…그러니까 자식은 부모에게 꿔준 돈을 받으러 온 거라고…난 왜 전생에서 빚을 안 졌는지…빚 좀 지고 살 걸…따위님은 전생에 참으로 여러 사람에게 저렇게 큰 빚을 지셨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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