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는 금요일밤 따님을 모시고 영화관에 간다. 영화관에 가며 과제를 준다. 영화 줄거리를 다섯 문장으로 요약하라. 따님이 물으신다. 아빠, 우리 팝콘은 안 먹어요? 안 먹는다, 고 대답하는데 마음에 가볍게 지진이 인다. 약해지면 안 된다. 내가 지금까지 너 사준 팝콘값을 저축했으면 제주도에 땅을 샀을 것이다. 따님 옆에 남은 빈 자리 하나에도 영화 시작 직전에 관객이 비집고 들어가 앉는다. 영화를 본다.
(상영중)
영화가 끝나고 포스터가 죽 붙어 있는 긴 복도를 걸어나오는데 따님이 불쑥 말씀하신다. 이걸 어떻게 다섯 줄로 줄여? 난 못해. 맞다. 과제 내 준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까짓 거 요약하거나 말거나 내가 알 게 뭔가. 이십사 년 일 개월의 참회를 한 줄에 줄인 윤동주도 있는데 영화 한 편 다섯 문장으로 줄이는 게 뭐가 어렵다구. 팝콘 사줬으면 아까울 뻔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번 과제 쉽지 않겠다 싶다. 10대 소녀가 첫사랑 얘기를 어떻게 다섯 문장으로 줄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 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다섯 문장도 너무 많다. 117분 짜리 영화를 이제 닳고 닳은—슬프다—나는 한 줄에 줄인다. “썅년”이 “썅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