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호젓한 토요일 오전, 호기를 부려 애들에게 큰 소리를 칩니다.
“야, 이기엽. 너 오늘 아빠하고 뭐하고 놀건지 생각해보고 얘기해.”
딴 짓을 하고 있던 아이가 별반응을 안보이자 아내가 거들고 나섭니다.
“기엽아, 아빠가 오늘 아빠하고 뭐하고 놀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얘기하래.”
그제서야 기엽이가 삐딱하게 쳐다보더니 말합니다.
“응, 오늘 아빠하고 어디 가고 싶은지 얘기하라구?”
나는 이크, 싶어서 교정을 합니다.
“아니, 어디 가고 싶은지가 아니고 아빠하고 뭐하고 싶은지 얘기하라구.”
아이가 금새 “으힝.”하며 싫은 체를 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 오늘 아빠하고 어디 가고 싶은지 얘기해.”
하는 수 없이 한 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걱정이 앞섭니다. ‘저게 에버랜드라도 가자고 하면 어쩌지? 아니면 롯데월드?’ 이윽고 한 참을 생각한 듯한 표정으로 아이가 말을 합니다. 이랬습니다.
“가게. 요 앞 상가에 있는 가게.”
휴, 십년 감수했습니다. 5백원이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시체놀이하는 일요일이면…
‘문화적인 자아’께선 꼭 그렇게 말했지….
오늘은 기필코 심야영화 한편 때리자구….
그러면 모든 자아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
오 일요일 밤 우아하게 영화 한편, 조아조아….
그러나 시간이 밤 9시를 넘어서면….
‘게을러터진 자아’께서 슬슬 딴지를 걸지….
귀찮게 왜 나가? 영화 보고 올때 텅빈 코엑스몰을 터덜터덜 혼자 돌아올 때,
기분 엿 같지 않을까? 그냥 티브이나 땡기며 뭉개자…그게 젤이야…
결국…그 넘이 모든 ‘자아’의 군소리를 제압하고 승리하고야 말지….
그래서 난 한번도 심야영화를 혼자 보지 못했지…
나름대로 심야영화 혼자보기 전공인 본인은…
문화적인 자아와 게으른 자아의 싸움이 아니라,
문화적인 자아와 외로운 자아의 싸움이옵니다.
흠…그러고 보니
게으른 자아가 외로운 자아보다 힘이 쎄구나
(따위넷에 오면 이상한 논리 놀음을 해얄 것 같은
강박에 사로잡힌다.
논리학과는 담 쌓은 인간 힘들다)
안그래도 걸식이님의 댓글을 보면서 마분지님의 혼자 심야영화를 보다를 떠올렸드랬습니다.
문화적인 에고, 게을러터진 에고, 외로운 에고,…에고머니나 저 많은 에고들…
그러나 역시 에고 중의 에고는 “내 고열의 에고가 버얼겋게 달아 신음했으므로”의 ‘고열의 에고’가 짱을 먹어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