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

그곳에서 나는 추웠다 그곳에서 나는 숨이 막혔다 그곳에서 마침내 그가 나를 꺼내 물에 담그자 해부학적으로 절단된 내 사지 육신에서 천천히 시간의 피가 흘러나왔다 핏물은 내가 한 때 누군가의 뜨거운 몸으로 존재했던 물질이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 순간에도 오래 비축해 둔 비장의 언어 같은 게 있을리 없었다 잔해가 남는다는 건 언짢은 일이다 아무도 연기처럼 사라지지 못한다 아무도 안개처럼 흩어지지 못한다 인생은 잔해이며 기억은 핏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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