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고라니

1.
편의점 가는 길, 고양이 한 마리가 아스팔트에 고인, 살얼음이 언 물을 핥아 먹으며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혹시는 허기를 달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내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여차하면 달아날 준비를 한다. 새삼스럽지만 세상은 위험한 곳이다. 내가 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는 못본척 녀석을 멀리 우회하는 것 뿐이다.

2.
교회 앞 도로, 새끼 고양이가 이제는 눈이라 부를 수도 없는 잔설 무더기 위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냉동돼 있다. 객사한 고양이의 살짝 벌어진 입안에 드러난 이빨이 날카롭다. 그런데 객사라고? 야생 고양이는 객사할 운명이 아니던가.

3.
얼마 전에는 아내가 국물 내고 건져둔 멸치를 슬며시 가져다가 고양이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 놓아두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흔적이 없다. 다저녁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거실 테이블에 며칠째 방치돼 있던, 구운, 마른, 딱딱한 오징어를 고양이 길목에 놓아두었다.

4.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고라니가 비닐하우스에 들어와 상추를 다 먹어대니 잡아달라는 전화다. 연전에 유튜브에서 본 덫을 설치하는 영상이 순간 머리를 스쳐간다. 방법을 알아보겠노라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Posted in 블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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