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파괴

요새, 뭔가를 제작중이다. 그러자니 이미 알고 있는 걸 다시 깨달아 간다. 별거 아니다.

그제,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그 부분’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닐 지도 모른다. 어제, 그 생각대로 도면을 그리고, 그 도면대로 나무를 잘라 테스트를 한다. 나무가 힘없이 부러진다. 욕심이 과했다. 애초에 안 되는 아이디어였다. 외관상 불필요하지만 기능상 필요한 부분은 그대로 남겨 두어야 한다. 꼭 필요한 부분이 없으니 나무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전날 떠오른 생각을 버린다. 미련이 남는다. 미련하다.

오늘, 나는 엇그제 자른 나무판을 다시 본다. 딴 거 하다가 우연히 다시 본다. 지금까지는 미처 못본 게 보인다. 그건 결이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나무결을 고려하지 않고 나무를 잘라 테스트했다가 실패했다는 걸 자각한다. 결대로 잘랐더라면 나무가 그처럼 허망하게 부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남은 미련이 오늘 다시 꿈틀 댄다. 미련하다.

나무로 뭔가를 만들 때는 반드시 나무결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게맛살도 결대로 찢어지지 않더냐. 내가 나무를 다시 잘라 테스트를 하게 될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결대로 자르면 나무가 스트레스를 그저 좀더 오래 견디는 것 뿐이니까. 피로가 쌓이면 파괴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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