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문상을 가서 친구들을 만났다. 한 친구는 “얘네 어머니는 신사임당 같은 분이신데 저 자식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율곡사업 같은 사업만 벌이다가 개망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크리스마스에는 오랜만에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가 돼지목살 사들고 놀러온 딸의 친구들에게 베란다에서 숯불 피워 고기 구워주고 난 다음, 아내와 스타워즈를 보고 왔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는 딸 안경을 맞추고, 시집을 한 권 사고, 부모님을 찾아 뵙고, 더불어 연예인 지망생 선생 노릇을 하는 조카도 보고 왔다. 크리스마스 다다음날에는, 그러니까 지금은 새로 산 시집을 읽고, 외출하는 아내를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주고, 김치 부침개 해서 아이들 먹이고 나도 먹고, 커피 한 잔 내려서 마시면서 이거 쓰고 있다. 이거 다 쓰면 볕이 좋으니 산책을 나갈 것이다. 모종의 슬픔과 모종의 안식이 교차하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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