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일

1.

아내는 빨래를 널고 있고 나는 삼겹살을 굽고 있다. 장차 미술을 하겠다는 딸은 말일이라고 번화가로 놀러 나갔다. 장차 음악을 하겠다는 아들은 어디로 놀러 나갔는지 모른다. 장차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막내는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저녁 먹고 막내는 자기 방에 들어 갔다.

아내는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교신 중인 것 같다.

나는 캔맥주를 하나 까마시며 자세와 제스처와 기호와 상징에 관한 책을 읽는다. 낮에는 빈둥거렸고 알렉산더 대왕을 읽었고 부두교에 관한 책을 읽었고 남태평양의 타이티를 구글지도에서 찾아 보았고 노래를 몇 곡 들었다. 빠롤이니 시니피에니 하는 이상한 단어들을 오랜만에 생각했다.

2.

아내가 막내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라고 시킨다.

“저기 저 소파에서 빈둥거리시는 분을 시키시죠, 어머니.”

“아빠는 저녁 차렸잖아.”

나는 괘념치 아니하고 하던 거 계속한다. 세계 뉴스 보는 거 계속 본다. 워싱턴 노숙자 얘기, 이란의 데모 얘기 본다.

3.

쿠션 베고 소파에 누워 있는데 아내가 새로 빨아 갈아 끼운 쿠션 커버에 때묻는다고 수건을 덧대준다. 덜마른 수건이다. 나는 인상을 쓴다. 아내가 다른 걸 대준다. 러그다. 나는 더 심하게 인상 쓴다. 나는 무릎담요를 쿠션에 댄다. 아내가 퇴각한다.

“헐, 기언아,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기언아.”

막내가 지 엄마에게 휴지 가져다 주고 저 하던 거 하러 가다가 쇼파 위의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저기 저 쇼파에 누워계신 분은 뭐하시고 나한테…”

나는 괘념치 아니하고 하던 거 계속한다. 삼박자 축복을 검색한다. 예수 잘 믿으면 영혼을 구원뿐 아니라 물질과 건강까지 얻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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