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의 행방불명

2003년 9월 30일 오전 4시 25분에서 8시 57분 사이에 문제의 개미는 평소처럼 방안을 여기저기 헤매고 있었다 침대 발치쯤에 이르렀을 때 개미는 어제까지 없던 가방을 발견하게 되고 뭐 먹을 게 있나, 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개미가 미처 답사를 끝마치기 전에 아내가 구워준 토스트를 먹고 아내가 타준 모닝커피를 마시며 이승엽이 한 시즌 최다 홈런기록을 달성하지 못한 채 “또 하루가 갔다”는 신문을 읽고 베란다에서 유치원 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을 입고 아, 가을인가 얼굴이 땅기네, 스킨을 발라야겠다, 하며 스킨을 바르고 난 다음 나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왔다 버스정류장에서 ‘은행나무 아직 노랗게 물들지 않았음’하고 누군가에게 상상으로 전보를 치고 버스를 탔고 자리에 앉았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몇 정류장 쯤 지났을까 나는 문득 가방에 묻어 있는 문제의 개미를 보았다 나는 개미를 손가락으로 톡 쳤, 아차, 싶었지만 개미는 툭하고 떨어졌다 개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읽던 책을 계속해서 읽었고 버스는 계속해서 달렸다 한편 버스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개미는 여기가 어디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고 생각했다 개미는 졸지에 넓은 세상으로 나왔으나 졸지에 갈 곳이 없어졌다 한편, 개미의 집에서는 아무도 개미의 부재를 알지 못했다

p.s. 찾아보니 작년에 이런 것도 썼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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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상팔이 소년*

    그 시절 소년은 늘 가난했는데
    ‘술’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한 소년은 손가락을 빨면서 돈 벌 궁리를 해보았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상상팔이’라는 기발한 직업이었습니다.
    소년은 전철을 돌면서 오백원부터 오만원까지하는
    맛있고 상큼한 상상을 팔아먹을 꿈에 부풀었습니다.
    -“상상 사세요, 상상이요!
    짧고 상큼한 상상부터 화려하고 찬란한 상상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상상 사세요, 상상이요!”
    ……………………………………………………………………………………..

    근수를 달아보니 한 만원어치는 넉근히 되겠습니다.^^

  2. Pingback: Pink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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