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와 은유

오래 된 집들이 철거된 자리는
쓰레기가 남몰래 버려지는
시간이 노골적으로 썩어가는
공터가 되어있다
포크레인 한 대가 땡볕 속에서 힘겹다
이제는 이런 풍경이 목가적인 풍경이다
물론 나도 휘갈겨쓴 플래카드가 나붙든 말든
목가적인 풍경 좋아하시네 하며
지나가면 그만이다 문득
이 마음을 다 철거하고 나면
나는 무슨 공터가 될까
내 마음의 공터에서 어떤 모질었던
인생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갈까
은유적으로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낡은 집들이 철거된 자리는
널직한 공터가 되어있고 그들은
이 공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밀고 다시 까는 것
나는 그새를 못참고 재개발 사업을
다시 컴퓨터에 무책임하게 비유하지만
사실 책임질 수 있는 비유는 많지 않다
그러니 지나가는 것이다
내 집은 벌써 오래 전에 철거되었으니
어머니의 항아리도 다듬이 돌도
다 두고 떠나왔으니
그런데 정말이지 이 쓸쓸한 마음마저 다
철거해 버리고 나면
나는 무슨 공터가 될까 그 공터에서도 누군가가
저 땡볕 속의 포크레인처럼 힘에 겨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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