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고라니

1.
편의점 가는 길, 고양이 한 마리가 아스팔트에 고인, 살얼음이 언 물을 핥아 먹으며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혹시는 허기를 달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내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여차하면 달아날 준비를 한다. 새삼스럽지만 세상은 위험한 곳이다. 내가 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는 못본척 녀석을 멀리 우회하는 것 뿐이다.

2.
교회 앞 도로, 새끼 고양이가 이제는 눈이라 부를 수도 없는 잔설 무더기 위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냉동돼 있다. 객사한 고양이의 살짝 벌어진 입안에 드러난 이빨이 날카롭다. 그런데 객사라고? 야생 고양이는 객사할 운명이 아니던가.

3.
얼마 전에는 아내가 국물 내고 건져둔 멸치를 슬며시 가져다가 고양이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 놓아두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흔적이 없다. 다저녁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거실 테이블에 며칠째 방치돼 있던, 구운, 마른, 딱딱한 오징어를 고양이 길목에 놓아두었다.

4.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고라니가 비닐하우스에 들어와 상추를 다 먹어대니 잡아달라는 전화다. 연전에 유튜브에서 본 덫을 설치하는 영상이 순간 머리를 스쳐간다. 방법을 알아보겠노라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마지막 단어들

많은 일들이 오래 전 기억이었다. 작년이나 재작년 일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고독 자유 불면 사랑 문학 철학 혁명, 젊은 시절 그는 이런 뜨거운 말들을 부끄러움도 모르고 연애편지에 적었으나 말년에 그가 그 뜻을 온전히 아는 언어는 녹내장처럼 슬픈 말들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어디서든 삐뚜로 서 있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 있는 묘비였다. 불길 속에서 타들어 가던 그의 관속에는 몇 개의 허망한 어휘들만 들어 있을 뿐, 가파른 문장 하나 들어 있지 않았다. 그 허망한 어휘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나의 패배

아내가 삶아준 국수를 먹으며 누들, 누들 그랬다. 이어 우든 찹스틱, 우든 찹스틱 하다가 발동이 걸리자 영어가 술술 나왔다. 이를테면 이런 품격 있는 문장들이. 마이 프레셔스 파더 이즈 존나리 핸썸, 이라거나 마이 푸어 마더 이즈 어 워먼. 식탁이 화기애매해진 가운데 아이들이 반응을 보였다. 막내도 영어를 술술 했다. 마이 파더 이즈 베리 베리 베리 낫 핸썸. 돼먹지 못한 놈이다. 공격을 안 할 수가 없다. 마이 리틀 보이 이즈 베리 토커티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막내는 말이 많았고 내게 지지 않으려 했다. 그렇다면 네가 모르는 단어를 말해주리라 하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마이 푸어 리틀 선이즈 베리 이리테이팅. 이리테이팅을 알 수가 없으니 내가 이길 게 뻔했다. 그랬는데 아니었다. 내가 졌다. 내가 저 고상한 영어 문장을 독일식과 일본식을 포함한 그러니까 유창한 발음으로 말하는 순간 막내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왓 더 헬! 이제 막 국수를 한 입 먹고 오물거리던 아내는 메두사 머리카락처럼 국수를 뿜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