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아내와 전화통화를 끝나자 막내가 묻는다.
“응, 엄마가 아빠 따듯한 외투 사 입혀서 새우잡이 배에 태우겠대.”
“새우잡이 배? 와 그거 재밌겠다. 나두! 나두!”
그러자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큰놈이 점잖게 끼어든다.
“넌 아직도 아빠 말을 믿냐?”
“누가 그렇대. 그냥 재미있겠다는 거지.”
농구
저녁 먹고 나서, 아빠, 하고 녀석이 부르면 겁난다. 용건이 뻔하기 때문이다. 농구하러 가자는 거다. 이건 뭐 지가 우발적으로 생겨났지, 내가 절 계획적으로 제작한 것도 아니고. 이 추운 11월에, 밤이면 밤마다 농구 서비스라니. 야 그냥 천 원 줄게 참으면 안 될까.
텅, 텅, 텅, 맨땅에 농구공 튀는 소리가, 이파리를 거의 다 떨군 쓸쓸한 나무들과, 이제는 아이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아 쓸쓸한 그네와, 미끄럼틀과, 내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아무 것도 없었던 청춘의 기억에 반향한다. 반향. 리버버레이트. reverberate. 문자 쓰고 자빠졌네.
내가 아들에게 농구를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저도 나도 다 되도 않는 드리블과 엉성한 자세로 헛방만 죽어라 날리다, 것도 운동이라고 몸에서 땀이 살짝 나기 시작하면 야, 이제 세 골만 더 넣고 가자, 하고 들어 오는 것이다. 나는 좋은 아빠야, 이 밤에 자식하고 농구해 주는 아빠가 어딨어, 하는 것이다. 야, 니가 니 배 아파 낳은 니 자식하고 내가 왜, 놀아줘야 되냐, 하며 아내 앞에서도 좀 당당한 것도 같고.
아들에게 농구를 가르칠 깜냥이 안 되니, 초빙할 ‘지도자’ 들이 떠오른다. 그래, 그 쉐이를 데려다가 술 한 잔 먹이고 농구란 이런 것이다 한 수 가르쳐 달라 부탁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술값 많이 나올텐데. 이런 심정 때문에 운동선수 부모들이 코치나 감독들한테 깜박 죽는 것일 것이다. 오늘은 문장에 ‘것’자가 많이 들어갈 것 같네. 오매 잡것.
아들아, 인사드려라. 이 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아빠가 고등학교 다닐 때 농구 일진 먹으시던 분이시다. 아, 이럴 때 이상민이나 허재하고 친하게 지냈으면 좀 좋아. 아들아, 인사드려라. 이 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대한민국 농구 일진이시다. 이럴 수 있지 않는가. 인생 헛 살았다. 헐 살았어. 하긴 뭐 아들 축구 가르친다고 박지성하고 친구하고, 아들 야구 가르친다고 선동열하고 친구하고, 아들 수영 가르친다고 박태환하고 친구하고,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사실 농구에 얽힌 아픈 기억이 있다. 수 만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급의 경기다. 그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경기 내내 나는 헛물만 켜고 있다. 우리편 선수는 아무도 나에게 패스를 안 해준다. 그러면서 내가 어쩌다 공이라도 잡을라치면 서로 자기에게 달라고 난리다. 어림 없다. 나는 결국 애써 따낸 리바운드를 상대방 선수에게 패스 해준다. 날로 준다. 공 달라는 자세를 보니 아주 사람이 됐다.
나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그녀가 제발 딱 한 골만 넣으라고 말한다. 나는 울부짓듯이 외친다. 야, 이 쉐이들아, 난 꼭 한 골을 넣어야 한단 말이다. 나도 골 넣고 연애 좀 해보자. 순간, 상대방 선수들이 불쌍했는지 수비를 멈춘다. 나는 혼자서 아무런 훼방도 받지 않고 공을 몰고 들어간다. 관중들도 그녀도 우리편도 상대방도 숨을 죽인다. 슛, 골인!
이었으면 그얼마나 좋았겠냐만, 그것마저 들어가질 않았다.
@
아빠, 나 오늘 좀 보기 힘든 장면을 봤어.
응, 커플끼리 네모했어.
다행히 나말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
“(연설하는 톤으로)이제부터 너희들은 내 입속을 여행하는 매우 영광스런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주의: 매우 아프니 들어갈 때 조심하시오.”
짜식, 강냉이 하나 먹으면서 오바는.
@
잘 씻어 말려 고이 모셔두었던 만년필을 꺼내 잉크를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