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더 살아도 결국 아무것도 없단다, 였을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죽어야할, 아니면 죽을 운명의 엑스트라 소녀를 살려주고 나서─아니면 구해주고 나서─ 남자가 쓸쓸하게 읊조린 말이다. 요즘 이 대사가 가끔 떠오른다. 예컨대 거리를 지나다가 잘익은 감을 보면 홍시를 유난히 좋아하는 어머니가 떠오르는데 그럴 때, 모종의 회한과 함께, 더 살아봐야 아무것도 없어요, 어머니, 하는 식이다.

지난 밤 나는 또 무슨 되도 않는 더러운 문장을 쓰다가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동틀 무렵에야 잠들었는데 아내가 깨운다. 늦었단다. 아이들 학교까지 태워다 주란다. 그런데 자식 1호 사람이 늑장이다. 머리 감고, 머리 말리고, 스타킹 신고, 또 뭐하는지 모르겠다. 자식 2호 사람과 먼저 나와 시동걸고 한참을 대기하니 1호가 올라탄다.

단지정문에서 나오자마자 첫 번째 신호등에 걸렸는데 자식 1호가 아차!, 한다. 룸미러로 보니 난감한 표정이다. 젖은 머리와 여드름이 듬성듬성한 게 예쁘다. 연유를 물으니 빼빼로를 안 가지고 나왔단다. 아, 오늘이 대망의 일레븐스 어브 노벰버구나. 신호를 기다리며, 반대쪽 차선을 살피며, 불법유턴을 감행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녀석은 더는 말이 없다. 그러면 그냥 간다. 귀찮다. 빼빼로 따위 때문에 차를 돌릴 수는 없다. 연양갱이면 또 모른다. 이렇게 된 이상 학교까지 간다.

신호가 바뀌고 다시 달린다. 얼마 후 1호가 2호에게 묻는다. 너 늦었지? 2호가 응, 누나, 하고 대답한다. 네가 아직 미련을 못버렸구나, 하고 말았다. 안 늦었다 했으면 차를 돌리자고 부탁했을까? 노벰버 레인이 추적추적 내리는 거리에는 어깨띠를 두른 은행원들이 2열로 늘어서서 행인들에게 뭔가를 나눠주고 있다.

2호 학교에 도착해서 2호가 내리고 나자 1호가 말한다. 아빠, 다시 집에 데려다 줄 수 있어? 나는, 결국 이럴 거였어, 하고 생각한다. 제길, 아까 회차했어야 했어. 1호 성격 몰라? 자식 한두 명 키워? 1호 학교는 2호 학교에서 한 1킬로미터 정도 더 가야한다. 지금 그냥 가면 간신히 지각은 면하겠지만 ‘위화도 회군’을 하면 지각이다, 지각. 학생이 지각을 하다니, 그럴 수는 없다. 직장인이면 몰라도. 나도 모르게 모진 말이 나간다. 데려다 줄 수는 있는데 다시 학교까지 태워다 달라고는 하지마. 1호는 쿨하게 대답한다. 알았어!

계획대로라면 지금은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화물을 목적지에 다 내려놓지 못한 마음이 무겁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담배 피우게 하리라. 아멘. 나는 담배 생각이 간절하고 1호는 빼빼로 생각이 간절하다. 차창 밖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노벰버 레인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잇스 하드 투 홀드 어 캔들 인 더 콜드 노벰버 레인.

자식이 원수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 철부지가 언제 크나, 슈퍼 그레이트 빅 신세한탄이 절로 난다. 그런데 가만 있어봐, 내가 다시 안 태워다 주면 저것이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며 쓰바, 버스를 기다리며 쓰바, 버스 타고 가면서 쓰바, 정류장에 내려서 산을 넘으며 쓰바, 물을 건너며 쓰바, 교문 앞에서 쓰바, 담임이 왜 지각했냐고 물으면 빼빼로 안 가지고 나와서 다시 집에 갔다 오느라 늦었어요, 라고 대답하다가 아이들이 와, 하고 폭죽처럼 웃을 때 또 쓰바할텐데. 그러면 완득이처럼 교회가서 아빠 죽게 해달라고 기도할텐데. 할 수 없다. 닥치고 배달이다.

나는 아침부터 심사가 뒤틀려 가속 페달을 마구 밟는다. 그래봐야 아무 것도 없다. 앞차가, 신호등이, 기름값이 나를 막는다.

마침내 저 꿈에도 그리던, 천하의 빼빼로를 챙기신 1호님을 모시고 다시 학교까지 간다. 지각 따위가 뭐가 중요해 빼빼로가 중요하지. 평소에 1호는 하차 위치를 내게 알려준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날은 여기, 학교로 직행하는 날은 저기다. 지금은 어디 내려줄까 묻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곧장, 다이렉트로 교문 앞으로 간다.

녀석은 고맙, 하고 헛나오려는 말을 막고 다녀올게요, 로 인사를 바꾼다. 속으로 고맙기는 개뿔, 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몰라 나도 속으로 다녀오기는 개뿔, 해주었다. 교문 앞에는 지각생들이, 오호 그러니까 꼰대적 시각으로 볼 때 인생의 낙오자들이 한 무더기 모여 있다. 여자 사람 선생님이 그들을 향하여 환하게 웃고 있다. 녀석이 그 무리에 가서 섞인다. 녀석이 있는 자리가 환하다.

11월 11일, 빼빼로데이다.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라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것이다. 외롭다. 누군가에게 가서 노벰버 애인이 되고 싶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빼빼로.

다뭐시기가 대체 뭔뭐시기인가

며칠 전 일이다. 아침 식탁에서 하얀 쌀밥 한 삽과 갓 구운 총각김치를 입에 넣고 오물우물거리며 고3대우 중1딸이 ‘다뭐시기’가 뭐냐고 묻는다. ‘다뭐시기’가 뭔지 발음이 불분명하여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때다. 꼰대정신을 발휘할 일주일에 한번 올까말까 한 기회다.

“잘 들어라. 전치사 with의 용법에 어떤 상황이 다른 일과 같이 일어나는 것을 표현하는 용법이 있다. 그런 걸 부대상황의 with라고 한다. 그 옛날에 일본놈님들이 그렇게 번역해서 말이 어렵다. 밥 먹을 때 찌개를 같이 먹지. 그때 먹는 찌개를 부대찌개라고 하는 거다.”

설명이 한창 중모리에서 중중모리로 넘어가려는데, 부대찌개 소리에 아내가 나를 흘겨본다. 안다. 나도 어이 없는 거. 그래도 무서워하면 안 된다. 뻔뻔해야 한다. 그래야 웃긴다. 아무려나 아버님 말씀 알기를 지나가는 꽹과리 소리로 아는 딸은 또 하얀 쌀밥 한 삽 떠서 입에 넣고 빨간 총각김치 집에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다뭐시기’가 뭐냐고 묻는다. 참아야 한다. 훌륭한 꼰대는 참을성이 많다.

“아빠가 여태 니가 물은 말에 대답을 하고 있었는데 너는 듣지도 않고 다시 묻는구나. 다시 설명할테니 잘 들어라.”

나는 앞의 말을 반복한다.

“전치사 with는 어떤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을 표현하는 데도 쓴다. 그런 걸 부대 상황의 with라고 한다. 일테면 부대찌개는 밥 먹을 때 같이 먹는 찌개를 말하는 것이다. (아내가 또 쳐다본다.) 부대상황의 with를 설명할 때 드는 대표적인 예문이 있다. DO NOT SPEAK WITH YOUR MOUTH FULL. 그러니 입 안에 음식물 물고 말하지 말란 말이닷! 알겠느냐. 자, 네가 궁금한 게 뭔지 다시 물어보거라.”

딸은 아빠에 대한 절망감에 한숨을 푹 쉬며 입안에 있던 음식물을 삼키고는 다시 묻는다.

“‘다뭐시기’가 뭐예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 듣는데…”

“영화 써니에 나왔는데. ‘다뭐시기’ 문학소녀라고…”

그러더니 딸은 밥 먹다가 말고 자기 방으로 달려가 두 트럭 분량의 영화 전단지를 가져와서 <써니>를 찾는다고 법석이다. 아내는, 밥 먹다가 말고, 자기가 찾아준다고 나서더니 찾으라는 <써니>는 안 찾고 다른 영화 전단지를 찬찬히 구경하고 계시다. 원빈이라도 있으면 품에 품을 기세다. 원빈, 너 나랑 싸우자.

지켜보던 딸이 답답한지 자기가 찾겠다고 나선다. 아내는 <최종병기 활> 전단을 빼어들고 물러난다. 나는 딸이 그 뜻을 궁금해하는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 궁금해 미치겠다. 드디어 찾던 걸 찾은 딸이 내 앞에 문제의 전단에서 7공주(6공주인가?) 가운데 한 명을 가리키며 말한다.

“얘가 다굿발 문학소녀래. 다굿발이 뭐냐고?”

“다끝발? 다굿빨? 대구빨? 다구빨? 뭔지 모르겠다. 사전 찾아봐라.”

그리하여 뭐야, 자기도 모르면서 아는 척은, 하고 속으로 본 꼰대를 향하여 무한 툴툴 거렸을 딸이 다뭐시긴지 다거시긴지 다끝빨인지를 검색하러 간 사이, 혹시나 싶어 아이폰 검색창에 /다구/까지 쳤더니 /다구빨/이 추천 검색어로 뜬다. 별거 아니었다.

또 꼰대

그대를 사랑합니다, 를 보다가 옆에서 훌쩍거리는 고3대우 중1 딸에게, 지금 네가 느끼는 그런 감정을 파토스라고 하는 거야, 영어로는 pathos라고 쓰고 페이소스라고 읽기도 한단다, 라고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화석화 된 꼰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