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지음), 우석균(옮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2004(1편 1쇄), 2006(1편 8쇄)

네루다의 시집을 탐독한 마리오가 메타포를 무기로 동네 처녀 베아트리스를 꼬셨다. 이러하다. “그가 말하기를 제 미소가 얼굴에 나비처럼 번진대요.” 마리오는 또 이런 말도 했다. “그대 머리카락을 낱낱이 세어 하나하나 예찬하자면 시간이 모자라겠구려.” 하는 수작이 뻔하나 베아트리스는 마리오에게 넘어갔다. “마리오가 해준 말은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저는 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할 때도 그 생각을 할 거예요.”

과년한 처녀를 둔 과부는 기가 막히다. “더 이상 말할 것 없어. 우리는 아주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렸어. 처음에 말로 집적대는 남자들은 다들 나중에 손으로 한술 더 뜨는 법이야.” 그러고는 딸에게 당장 가방을 싸란다. 잠시 떠나 있으라는 것이다. 베아트리스는 “악다구니를 썼다.”

“‘기막혀! 남자애 하나가 내 미소가 얼굴에서 나비처럼 날개짓한다 그랬다고 산티아고에 가야 되다니.’
과부 역시 열을 올렸다.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대단한 과부다.

아이들에게 오늘의 은유를 가르칠 때 교과서로 삼기에 딱 좋은 책인데 내용이 야해서 저어된다. 그밖에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이라는 것, 영화와 책의 내용이 조금 다르다는 것, 경쾌하게 읽히나 내용은 짠하다는 것,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는 것을 적어 둔다.

오늘의 은유

글쎄다.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 곁에 가 누우면 아이들이 이런다.
“아빠, 또 오늘의 은유 하려고 그러죠? 주제가 뭐예요?”

나는 책이니, 아침이니, 엄마 젖가슴이니 하는 주제들을 불러준다.
아이들은 알고 하는 건지 모르고 하는 건지 한 마디씩 떠든다.
나는 합격, 불합격으로 아이들의 오늘의 은유를 평가한다.

아이들의 수준은 이렇다.
“엄마 젖가슴은 찐빵이다.”
“책은 우주다.”
“백운대는 바늘이다.”

아이들을 재워 놓고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온 <<은유>>를 꺼내 읽는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옮겨 적는다.

“중세기의 기독교 사회에 있어 기본적인 은유는 세상은 神이 著述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어떤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표면적으로 ‘말한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뜻’할 수 있었고 또 했던 것이다.”

글쎄다. 옛날 말로 호적대장에 잉크도 안 마른 놈들을 상대로 오늘의 은유라니.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아이들 참 엽기적으로 키운다 할 지도 모르겠다.
애비가 엽기적이니 할 수 없다.

같은 책의 앞머리에 이런 구절이 있다.
“比喩言語(figurative language)란 그 언어가 서술하는 바를 의미하지 않는 언어이다.”

나는 무엇을 의미하고 싶었던 것일까.
오늘 밤에도 의미가 바람에 스치운다.

철거와 은유

오래 된 집들이 철거된 자리는
쓰레기가 남몰래 버려지는
시간이 노골적으로 썩어가는
공터가 되어있다
포크레인 한 대가 땡볕 속에서 힘겹다
이제는 이런 풍경이 목가적인 풍경이다
물론 나도 휘갈겨쓴 플래카드가 나붙든 말든
목가적인 풍경 좋아하시네 하며
지나가면 그만이다 문득
이 마음을 다 철거하고 나면
나는 무슨 공터가 될까
내 마음의 공터에서 어떤 모질었던
인생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갈까
은유적으로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낡은 집들이 철거된 자리는
널직한 공터가 되어있고 그들은
이 공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밀고 다시 까는 것
나는 그새를 못참고 재개발 사업을
다시 컴퓨터에 무책임하게 비유하지만
사실 책임질 수 있는 비유는 많지 않다
그러니 지나가는 것이다
내 집은 벌써 오래 전에 철거되었으니
어머니의 항아리도 다듬이 돌도
다 두고 떠나왔으니
그런데 정말이지 이 쓸쓸한 마음마저 다
철거해 버리고 나면
나는 무슨 공터가 될까 그 공터에서도 누군가가
저 땡볕 속의 포크레인처럼 힘에 겨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