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도쿠

스도쿠를 하다 보면 안다. 어떤 숫자가 그 칸에 들어갈 정확한 답인지, 아니면 일단 넣어 놓고 보자는 심산으로 써넣는 숫자인지. 전자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성취감이 파도를 치며 몰려드는데 반해, 후자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고나면 어쩌다 운이 좋아 문제를 푼 것이라는 자각에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체스 천재를 다룬 <위대한 승부>라는 영화에 보면 사부님이 제자에게 체스판의 말들을 모조리 쓸어버린 다음 빈 체스판을 앞에 두고 수를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장면이 있다. 스도쿠도 저 영화에 나오는 방법으로 어떤 칸에 들어갈 숫자를 콕 찝어내기 전에는 손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리라. 오늘도 나의 스도쿠에는 빈 칸이 너무 많다.

스도쿠

매트릭스에는 아홉 개의 방이 있고, 각 방에는 다시 아홉 개의 칸이 있다. 이 아홉 개의 칸에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하나씩 수납하면 된다. 간단하다. 그러나 이게 규칙의 전부였다면 세상사 얼마나 수월했겠는가. 비가 내리고 어머니가 시집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냥, 화사한 봄날 초속 10센티미터로 낙하하면서 아주 그냥…

아, 나는 군대 가서 지겹게 들었다. 일개 이병으로, 일병으로, 상병으로─더 없다. 어느 날 아침 밥상에 밥과 김치와 계란 후라이만 올렸더니, 우리 딸이 묻더라. 더 없느냐구. 그날은 군말 없이 고추장 삼겹살 볶음을 더 대령했다만 오늘은 더 없다. 진짜 없다. 내 인생에 병장은 없다─줄 서서 대가리 박을 때, 줄 서서 오리 걸음 걸을 때 나는 지겹게 들었다. 오와 열을 맞추라는 소리를! 내가 속한 오와 내가 속한 열에 나와 같은 놈은 없어야 한다. 이것이 게임의 두 번째 규칙이다.

그리하여 문제의 게임, 스도쿠를 해보면 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오과 열을 살피며 매트릭스 전체를 살펴야 한다는 것을. 괄호 열고, 참고로 매트릭스는 유명한 영화의 제목이기 이전에 ‘행렬’이라는 뜻이다. 다시 괄호 열고, 나는 왜 앞 문장을 대가리 속에 곱게 처박아 두지 못하고 굳이 괄호쳐서 여기에 쑤셔넣는가? 괄호 닫고, 또 괄호 닫고.

이 게임만 풀고 자자, 이 게임만 풀고 자자, 흐리고, 시리고, 졸린 눈을 벅벅 문대가며, 남들은 엎드려 시를 쓸 시간에, 나는 엎드려 아이폰 게임이나 하다가 느지막히 일어 났더니, 타임라인에는 소말리아 인질 구축의 영광을 그분께서 낼름 전유하셨다는 소식뿐. 매트릭스에는 오와 열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