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토요일 오후, 자제분들을 모시고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 송구스럽게도 아내마마께서 운전을 하옵신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생애와’ 트와잇라잇의 벨라를 생각한다. 오, 벨라 피 한 방울만 마셔봤으면. 그때다. 버스전용차로 단속 카메라에 속도감시기능이 있는가? 운전에 몰입하신 아내마마께서 하문을 하신다. 모른다. 그런 세속잡사를 내가 어찌 아나. 잘 모르겠사옵니다. 무성의한 내 대답에 아내마마께서 질주본능을 억제하시는 게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길 아우토반이 되거라. 문 열어라 피야. 문 열어라 피야. 마늘과 십자가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피야. 문 열어라 피야. 아니, 이 마당에 미당은 또 왜 떠오르나. 나는 다시 오, 벨라, 나의 이사벨라만 생각하기로 한다. 뉴문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그때다. 뭐야? 여기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는데 이 네비게이션은 왜 안내를 안 하지? 아내마마께서 혼자 말씀을 하옵신다. 하마터면 큰 일 날뻔했다. 그러고보니 네비게이션 업데이트 해드린 지가 꽤 지났구나. 이런 불충한 남편을 봤나. 집에 가면 당장 해드려야겠다. 런던의 노란 안개와 가스등 불빛이 창밖을 휙휙 지나간다. 어,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