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트라우마

가는 길 몇 미터 전방에
슬그머니 떨어지는 잎새 하나
놀래라, 날더러
어찌 지나가란 말이냐

지나온 길 몇 백미터 후방에
아득해라, 어릴적 내가 우두커니 서있다

나는 길에서 아버지를 두 번 만났다. 풍덕천 신작로에서 큰할머니네 황소를 빌려 끌고오던 아버지와 원효로 중국집 앞에서 짐자전거를 타고가던 아버지. 황소를 끌고오던 아버지를 보았을 때 나는 네 살이었고 혼자였다. 짐자전거를 타고가던 아버지를 보았을 때 나는 열두 살이었고 친구와 함께 있었다. 아버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울었고 아버지를 두번째 보았을 때 나는 외면했다.

내 인생의 절반은 공백기였나보다

a cornerwide web 3

어제까지 넓은 세상 한쪽 구석에 있던 거미줄이 사라졌다 거미줄에게 잠시 자리를 내주었던 허공은 다시 본연의 허공이 되었다 나는 허공을 향하여 定處없는 문자를 날렸다 내 문자가 그곳에 당도했는지 알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