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의 노래

“근데 이순신이 죽지?”
“엉, 죽어.”
“엄마, 근데 칼의 노래가 뭐야?”
“음……그건 아빠한테 물어봐.”
“아빠, 칼의 노래가 뭐야?”
“칼이란 말이야 무를 상징하는 건데 말이야. 무가 뭐냐하면 말이야 말로 하는 게 아니고 주먹으로 해결하는 거거덩. 그러니까 칼의 노래는 곧 주먹의 노래하고 같은 뜻인데 말이야. 주먹이 왜 노래를 부르느냐 하면 말이지. 말로 노래하면 안 되니까 주먹이 노래를 부르는 거거덩. 왜 말로 해서 안 되느냐 하면 말이지. 할 수 없는 걸 요구하거덩. 그러니까 말이야 일본이 조선을 통째로 날로 먹으려고 했거덩. 자, 네가 조선사람이라고 해봐. 근데 어느 날 일본 사람이 와서 니네 땅 내 놓아라 하면 말이야 너 같으면 주겠냐? 안 주지, 못 주지. 그래서 안 준다. 못 준다 했더니 일본 사람이 주먹으로 널 한 대 때리는 거야. 아프지. 하지만 너 같으면 주먹으로 한 대 맞았다고 니네 땅 주겠냐? 안 주지, 못 주지. 근데 맞으니까 아프잖아. 그래서 말로 하는 거야. 야, 때리지마. 그랬는데 일본 사람이 또 때리는 거야. 너는 다시 말로 하는 거야. 야, 때리지마. 그런데 일본 사람이 또 때리는거야. 자, 이렇게 계속 맞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너도 용기를 내어 일본 사람을 때리는 거야. 결국 서로 주먹질을 하게 되는 거지. 그게 전쟁이야. 주먹 가지고 싸우면 주먹의 노래고, 칼 가지고 싸우면 칼의 노래고, 돈 가지고 싸우면 돈의 노래고 뭐 그런 거라는 말씀. 너 아빠의 개떡이 무슨 찰떡인지 알겠냐? 근데 말이야, 네가 보는 만화책 칼의 노래는 원래 소설책이었는데 그 원작을 만화가가 만화로 그린 거야. 원작 칼의 노래는 말이야, 아, 원작은 말이야 원래 작품이라는 뜻이거덩, 아무튼 칼의 노래를 쓴 김훈이라는 소설가는 말이야 허무주의를 미학화하거덩. 그 사람이 최근에는 남한산성이라는 소설도 썼는데 말이야, 그것도 싸움질하는 거거덩…… 아무튼 말이야, 미학화가 뭐햐하면 말이지……”

처음에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내 말을 듣던 언이는 어느 새 도망가고 없다.

메모 삼아 몇 개 적어 둔다.

1.
나 어려서도 가훈을 적어오라는 거지 같은 숙제가 있었다.
우리집이야 가훈 따위가 있을 리 없는 명문가였으니 대충 좋은 말로 적어갔으리라.

“우리집 가훈이 뭐예요?” 며칠 전 나우가 물었다.
“읽어라.” 내가 대답했다.
“아니, 장난하지 말고 진짜로 말해줘요.” 나우가 다시 물었다.
“농담 아니다. 읽어라.” 내가 다시 대답했다.
후일담은 모른다.

나우가 다시 묻는다면, 혹은 기엽이가, 혹은 기언이가 이런 숙제를 해가야 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개념.”

2.
요즘은 자식들에게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효과가 있는지 나우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빠, 그러니까 기엽이가 지금 개떡 같이 말했는데 내가 찰떡 같이 알아들은 거지?”

3.
“아빠, 왜 앞머리가 길면 앞머리를 자르고, 뒷머리가 길면 뒷머리를 자르고, 옆머리가 길면 옆머리를 잘라?” 머리 자르러 가는 길에 언이가 진지하게 물었다.
“앞머리가 긴데 옆머리를 자르면 앞머리가 짧아져?” 내가 대답했고 녀석이 웃었다.
가보니 미용실 문이 닫혀 있었다. 생각해 보니 화요일이었다. 화요일은 미용실이 쉬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