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 아이폰으로 듣던 어느 녹음 파일의 재생이 종료되고 자투리 시간이 좀 남았다. 세상이 하 시끄러우니 아무 소리나 들려오라고 이어폰의 플레이버튼을 누른다. 무슨 소리가 난다. 하필 정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동화가 안 되는 음원이다.
내 계정으로 딸이 다운로드 받아놓은 음원이다. 원, 투, 쓰리, 포, 화이브, 식스, 세븐, 에잇, 나인. 이런 가사가 반복적으로 들린다. 아이폰을 꺼내 화면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누구의 무슨 음원인지 알 길이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으니 그냥 참고 듣는다. 이어지는 음원은 아는 노래이다. 이제야 정서가 좀 안정되는 것 같다. 노래 제목은 말해 주지 않겠다. 그렇다고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서산 아래, 처럼 아주 먼 곳까지 되돌아간 노래는 아니니, 설마 당신이 걱정할 리는 없겠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 계정으로 딸이 아내 컴퓨터에 다운로드 받아놓은 음원을 내 아이폰에 쑤셔 넣은 자는 물론 나다. 내가 그랬다.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시대에 영 낙후 되지 않으려면 최신 음원은 좀 들어 둬야하지 않겠냐는 문명인의 자기계발 의식의 발로 때문인지 아니면 덕분인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어제 밤에는 계정에 노래 다 떨어졌다고, 노래 더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느냐고, 노래 더 다운로드 받게 해주면 십 년 동안 설거지 하겠다고, 딸이 요청해 오는 걸 개무시 해 놓은 터라 아비된 자의 마음이 천 길 깊이로 쓰라리고 부대끼고 나부끼어 낮에 계정에 40곡 다운로드 할 수 있게 거금을 들여 결제해두었던 터였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이번 정차할 정류장과 다음 정차할 정류장 사이에서 부녀지간의 대화와, 부녀지간의 관계와, 부녀지간의 노래와, 부녀지간의 거리 따위에 대해서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신곡 듣기는 정말 싫은데. 야, 그냥 네가 옛날 노래 좋아하면 안 되겠니?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