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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이야기—지식

이런 것도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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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무식하다는 건 모든 질문에 무조건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은 아닐텐데도 도깨비 방망이 열 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다섯을 머리에 뿔도 없는 따라서 한심한 인간들이 훔쳐갔다면 남아 있는 방망이는 모두 몇 개인가와 같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간단한 질문에조차 짐짓 모른다고만 대답하면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도깨비이므로 공주와 결혼시켜 달라고 날이면 날마다 줄지어 찾아오는 낯두꺼운 낮도깨비들을 상대하다보니 애당초 도대체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도깨비 왕국의 왕노릇이 너무 지겨워 떡두꺼비 같은 손주 하나 얻어 그 어린 것 재롱이나 보면서 또 한 백 년 소일이나 하겠다고 심심풀이 삼아 이런 일을 벌인 것이 후회가 아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천하의 도깨비 왕 체면에 대보름 달 밝은 밤에 노래의 숲에서 옥쇄 방망이를 세 번 두드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도깨비를 사위로 삼겠노라고 온 천하에 대고 내린 교지를 취소할 수도 없으니 기왕지사 이리 된 마당에 언젠가는 그럭저럭 쓸만한 녀석이 나타날 것이라는 마음으로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도깨비 빤스는 몇 년에 한 번 빨아입는 것이 좋은가와 같은 개중 중차대한 국사를 처리하는 틈틈이 무남독녀 외동딸의 남편감을 고르는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또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는 데다가, 도깨비 문학, 도깨비 역사, 도깨비 철학 등 도깨비 인문학은 기본이려니와 도깨비 방망이 엔지니어링, 심지어는 머리에 뿔도 없는 따라서 한심한 인간들을 연구하는 도깨비 문화인류학까지 두루두루 섭렵하여 신랑감의 첫 번째 조건인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도깨비이기는 커녕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유식한 도깨비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는 것도 많고 진짜 무식은 단순히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며 그러한 무식은 오로지 배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그 까닭은 지식의 바람을 많이 불어넣을수록 무식의 풍선을 크게 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설명을 섞어가면서 비록 자신의 무식이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기는 하나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천하제일의 무식한 도깨비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니 부디 공주와 결혼시켜 달라고 청하는, 더욱이 이목구비가 울퉁불퉁한 게 생긴 것도 근사한 도깨비가 나타나자 안 그래도 무식한 놈에게 금쪽 같은 딸을 내어주기가 싫었던 도깨비 왕은 그만하면 됐다 싶어 공주를 불러 드디어 공주가 원하는 신랑감을 찾았으니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손 없는 날을 잡아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 이 말은 들은 공주가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자신에게는 사실 오래 전부터 혼인을 약조한 사내가 있었지만 이 사내가 하필이면 도깨비 왕국이 국법으로 혼인을 금하는 머리에 뿔도 없는 따라서 한심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국법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국법이 울어서 차마 부왕에게 말을 못하고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그저 어떻게든 시간이나 벌어볼 요량으로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도깨비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생고집을 피웠던 것이라고, 그 동안 남모르게 속을 많이 태웠다고, 이제 다 털어놓으니 후련하다고, 그 남자 정말 괜찮다고, 머리에 뿔도 없는 따라서 한심한 인간에게 시집가면 정녕 아니 되는 것이냐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하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기다리며

우울해서 에버노트를 뒤적이다가 몇 년 전에 썼던 게 눈에 들어와 여기 올린다. 대충 읽어보니 덜어내고 싶은 것도 있고 눈에 거슬려 다듬고 싶은 것도 있는데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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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님은 심심하시다. 어린이가 놀지 않는 어린이 놀이터를 삼대 째 쓸쓸히 지키고 서 있는 미끄럼틀과 그네와 시소 삼남매 보다도 다섯 배는 더 심심하시다. 뒷바퀴님이 슬슬 오늘의 대화를 시작하신다.

— 어이, 거기 앞 동그라미.

앞바퀴님은 들은 척도 안 하신다. 뒷바퀴님이 말의 강도를 높여 다시 앞바퀴님를 부르신다.

— 어이, 하는 일도 없이 앞자리 차지하고 있는, 이빨 빠진 앞 동그라미.

비로소 앞바퀴님도 슬슬 장단을 맞추시기 시작하신다. 심심하니까 이렇게라도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어이, 구르지도 못하면서 하는 일도 없이 뒷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유명무실한, 게다가 바람마저 빠진, 천하의 찌그러진 뒷 동그라미, 또 왜 그러시나?

— 뭐? 너 방금 나보고 바람 빠진 뒷 동그라미라고 했냐?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이냐?

— 어허, 자네가 나를 먼저 건드렸다는 걸 명심하시게. 옛말에 바퀴도 밟으면 꿈틀한다지 않는가. 아무튼 미안 하네. 자네가 다시는 안 그런다고 약조하면 나도 다시는 안 그런다고 약조 함세. 그런데 왜 불렀는가?

앞바퀴님이 바로 사과하자 마음씨가 빗자루처럼 고운 뒷바퀴님도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말씀하신다.

— 아무튼 자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좀 굴러보시지. 우리 자전거의 일등석을 차지하고서 명색이 앞 동그라미라는 작자가 지금 대체 뭐하는 건가? 자네는 앞 동그라미로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도 않은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롭지도 않은가? 우리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 이봐, 뒷동그라미. 옛부터 바퀴는 삐둘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그랬어. 구르는 일은 자네 담당이야. 나는 중심을 잡는 게 일이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겠는가? 자전거를 움직이는 것은 뒷바퀴다. 저 유명한 자전거 교본 <자전체의 회전에 관하여>에 나오는 말일세. 책 좀 읽어. 그리고 귀가 없으면 말을 하지 말어.

뒷바퀴님은 물론 알고 계신다.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그리고 또 뒷바퀴님은 알고 계신다. 어느 동그라미가 자전거를 추진하고 어느 동그라미가 중심을 잡는지. 다만 허구헌 날 제자리에 서 있자니 온 타이어가 다 가렵고 심심해서, 그저 심심해서 심심파적으로 시비를 거시는 것이다.

— 오호, 그러셔? 그러는 자네는 그렇게 중심을 잘 잡으셔서 임진참사를 일으키셨어?

기어코 뒷바퀴님이 임진참사 얘기를 꺼내신다. 임진참사란 우리의 문제적 자전거님이 임진년에 어린이를 태우다가 넘어지신 대참사를 말한다. 지구에서 자전거가 넘어졌다는 소식이 저 멀리 안드로메다까지 전해져 온 우주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사고 이후로 우리의 용감한 어린이 사람은 자전거님을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의 문제적 자전거님은 여기 이렇게 쓸쓸하게 버려져 계시다. 오, 천지신명이시여! 달리고 싶은데, 달리지 못하시는 자전거이시여!
달리고 싶은데, 달리지 못하는 비운의, 운명의, 문제적 자전거 대마왕님의, 총애를 받는 앞바퀴님의 장단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바퀴님들의 대화는 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고 돈다.

–아, 글쎄. 임진참사는 내 책임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저기 저 고매하신 앞작대기 책임이라고, 저 앞작대기가 그때 우리가 넘어지려는 쪽으로 움직였어야 했는데, 아 글쎄, 저 두뇌가 없는, 그러니까 삐쩍 마르고 아무 생각이 없는 앞작대기가 글쎄, 내가 가려는 반대쪽으로 나를 기울였다고.

— 아니 앞작대기가 자네를 좀 돌렸다고 세차운동을 멈추고 확 넘어져 버리면 어떡하나? 동그라미가 그렇게 옹졸해서야 쓰나. 동그라미는 예로부터 원만한 성격이 미덕이라네.

— 모르는 소리 말아. 뒷동그라미 자네는 정말 자전거 물리학에 대해서 아는 게 없구먼. 쯧쯧. 거짓말 좀 넉넉히 보태서 내가 벌써 수 백번도 넘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나.

— 그랬나? 나는 통 기억이 없는 걸.

— 어쨌든 들어보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우리 자전거에게는 자네도 아다시피, 아참, 자네는 모르겠구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네.

— 우리에게 약점이 있다구? 그런 소리 말게. 우리는 완벽한 존재라네.

— 말 끊지 말고 들어보라구. 자네가 가위인가? 왜 냉면 면발 자르듯 남의 말을 끊나. 아무튼 우리의 약점은 정지상태에서 서 있지 못한다는 거네. 생긴 거에 비해서 무게중심이 무척 높거든.

— 아니 우리 생긴 게 어때서?

— 우리도 인간님네들처럼 대충 좌우대칭으로 생겼다는 소리네.

— 거, 듣자듣자하니 갈수록 모를 소리만 하는군. 안 그래도 심심한데 자네 말을 들으니 더 심란해지네. 그러니 제발 요점만 간단하게 말하게.

— 그러지. 아무튼 내가 가려는 쪽으로 앞작대기를 돌려야 자전거의 무게중심과 원심력이 쓰러지려는 반대쪽으로 이동한다네. 내가 쓰러지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그날 앞작대기의 행동은 그러니까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격이요,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려준 격이요, 내리막길에서 페달을 구르는 격이네. 일이 그렇게 된 거야. 아, 거기 앞작대기. 딴청 피우지 말고 귀가 있어 내 말을 들었다면 어디 속시원히 말씀을 좀 해보시오.

이쯤 되니 핸들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으시다. 이제 핸들님 차례다. 차례는 골고루 돌아온다. 시간은 많고 자전거님네 식구는 얼마 되지 않는다.

— 참나, 아니 내가 방향을 잘 잡으면 뭐 하냐구. 자전거가 추진력이 없는데. 구르는 바퀴는 넘어지지 않는다. 몰라. 저 유명한 자전거 교본 <자전체의 회전에 관하여>에 나오는 말일세. 그때 뒷동그라미 자네가 조금만 더 열심히 일을 했어도 우리가 그렇게 무참하게 넘어지는 일은 없었을 거야. 백주대낮에 망신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거고. 그랬다면, 오 정말이지 바야흐로 제발 덕분에 부디 그렇게 넘어지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저 바다가 육지라면, 그리고 또 저 라면이 맛있다면, 그리고 또 아무튼지 그랬다면 저랬다면 오늘처럼 햇볕 좋고, 바람 좋고, 꽃 좋은 날에는 우리가 저 푸른 자전거길을 바람을 가르며 마음껏 신나게 달리고 또 달리고 있었을 거라고… 그러다가 마침내는 이륙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어이, 거기 기타 등등 잡다한 부품님네들, 안 그런가?

뜻하지 않게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뒷바퀴님이 이번에는 죄없는 체인님에게 책임을 떠넘기신다.

— 모르는 소리 하지 말어. 나도 열심히 구르고 싶었어. 생긴 것도 그렇고 이름도 그렇고 나도 명색이 바퀴인데, 그것도 이 은하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천하의 명 뒷 동그라미님이신데, 나라고 어찌 구르고 싶지 않았겠는가? 나라고 어찌 자전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저 쇠사슬이 움직이질 않았어. 자네들도 알다시피 쇠사슬이 돌아야 내가 굴러가는 것이 아닌가? 지구는 자전하지만 우리는 이름만 자전거지 도무지 자전하지 못한다는 말일세. 임진참사, 그건 다 저기 저 쇠사슬 때문이야. 쇠사슬이 범인이야. 우리는 우리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저 쇠사슬을 내보내고 딴 쇠사슬을 영입해야 돼. 듣자하니 옆동네에 가면 성능 좋은 쇠사슬이 많다고 하던데… 옆동네까지 갈 방법이 없네. 가면 참 좋은데…

앞바퀴님은 누구 들으라는 건지, 아니면 혼자 중얼거리시는 건지 모르게 말꼬리를 흐리셨다.

그러자 브레이크님, 안장님, 변속기님, 그밖에 모든 자전거 부품님들이 너나할 것 없이 중구난방으로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서신다.

— 맞아, 맞아. 지구는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는데 우리는 이름도 자전거이고 생긴 것도 자전거인데,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입에서부터 똥구멍까지, 에이부터 제트까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다 자전거인데 자전도 못하다니. 이름이 아깝네. 이게 뭔가.
— 맞아, 맞아. 지구는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면서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갈봄 여름 없이 재미 있게 돌고 도는데 명색이 자전거인 우리는 자전도 못하다니. 이게 뭔가.
— 이게 뭔가.
— 자전거 신세가 참 말이 아니군.
— 자전거 신세가 참 처량도 하군.
— 난 몸 여기저기가 다 녹슬었군.
— 그런데 다 녹슬었군, 이라니. 몸통막대기 자네는 말이 좀 이상하군. 제발 자기 말을 남의 말을 하듯 하지 말게군.

몸통막대기는 이 모든 부품님들과 연결되어 있는 자전거 프레임님이시다. 튼튼하시다.

— 말도 말게. 나는 볼트 너트가 다 도망 갔다네.
— 볼트 너트가 다 어디갔다고?
— 도망!
— 거기가 어딘가?
— 아하, 무식하기는! 책 좀 읽게.
— 말도 말게. 나는 내가 뭐하는 부품인지도 망각했다네.
— 망각은 또 어딘가?
— 잊는다는 뜻이네. 새털처럼 많은 날, 제발 사전이라도 찾아보게.

이때 부품님네들의 푸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체인님이 버럭 화를 내신다.

— 아, 이 부품들아,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는가? 그리고 또 가락국수를 삶아 먹었나 왜 그렇게 말들이 오락가락하나? 도대체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 들으시겠는가? 서양 속담에 벽에도 귀가 있다는데 자네들은 귀가 없나? 귀가 없으면 말을 하지 말어. 내가 움직이지 않은 건 내 책임이 아니야. 저 발바닥들 책임이지. 구르는 바퀴는 넘어지지 않는다. 발바닥을 밟아라. 저 유명한 자전거 교본 <자전체의 회전에 관하여>에 나오는 말일쎄. 발바닥들이 돌아야 나도 움직일 수 있단 말이지. 나도 움직이고 싶었는데 저 천하의 게으르고 발꼬랑내 풀풀 나는 저 발바닥들이 도통 움직이질 않으니 난들 어떡하나? 내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앞동그라미가 쇠사슬을 거들고 나서신다.

— 맞아. 발바닥들이 움직이질 않아. 발바닥들이 움직이면 우리는 달릴 수 있는데. 아, 발바닥들이 도무지 움직이질 않아.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발바닥들은 게을러. 발바닥들은 나빠. 발바닥들은 냄새나. 어이, 거기 발바닥들, 듣는 귀가 있으면 그 무좀걸린 엄지발가락 같은 입으로 뭐라고 말 좀 해봐.

그러자 개중 과묵한 자전거 부품인 페달님들도 결국 한 마디 하신다. 자자손손 전해질 누명을 쓸 수는 없는 까닭이다.

— 아, 몇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귀가 없으면 말을 하지 말어. 우리라고 이렇게 서 있는 게 좋기만 하겠어. 아무도 우리를 밟아주지 않는데 우리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나. 그건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지는 것처럼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야. 아, 향긋한 신발 냄새 맡아본지 얼마나 오랜지.

그러자 브레이크님, 안장님, 변속기님, 그밖에 모든 자전거 부품님들이 저마다 중구난방으로 오락가락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서신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 아, 달콤한 윤활유 냄새 맡아본지 얼마나 오랜지.
— 아, 오뢴지 먹어본지 얼마나 오랜지.
— 맞아. 사실은 발바닥들도 죄가 없지.
— 아무렴, 발바닥들은 무죄.
— 맞아. 이게 다 인간들 탓이야.
— 맞아. 지금 자전거 타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유죄가 뭔가?
— 죄가 있다는 뜻이네. 책 좀 읽게.
— 인간들은 나빠. 게을러.
— 자전거는 무죄. 인간은 유죄.
— 무죄는 또 뭔가? 먹는 건가?
— 먹는 거 맞다네. 무죄는 무지 맛나다네. 그리고 제발 사전이라도 좀 찾아보게. 새털같이 많은 날
— 아무렴.
— 얼씨구.
— 절씨구.
— 지화자.
— 좋다.
— 잘들 논다.
— 원래 그런 거라네. 마음이 허하면 소리가 헛나오는 거네.
— 이럴 바에야 차라리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지는 게 낫겠어.
— 미끄럼틀은 정말 미끄러운가?
— 그렇다더군.
— 내리막길을 올라가면 어떤 느낌일까?
— 글쎄 나는 오르막길을 내려가본 적은 있어도 내리막길을 올라가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네.
— 그거야 뭐 평상시에 비상문으로 드나드는 것과 비슷하겠지.
— 그럴까?
— 그렇겠지.
— 그런데 지금 몇 시지?
— 시간은 알아서 뭐하나? 어차피 우리는 영원히 서 있어야 하는데…
— 아니, 우리는 나무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데 왜 영원히 서 있어야 하지.
— 자전거는 자전하고 싶다.
— 그런데 왜 자전거는 있는데 공전거는 없는 것일까.
—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지.
— 공전거는 공전하고 싶다.
— 영원이라고?
— 그렇다네. 영원히.
— 슬픈 일이지.
— 아무렴. 슬픈 일이지.
— 저 새는 좋겠네.
— 저 새는 좋겠다.

그러나 이렇게 한바탕 휘몰아치며 달린 입이라고 저마다 한두마디씩 떠들어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앞바퀴님도, 뒷바퀴님도, 체인님도, 핸들님도, 페달님도 그밖에 프레임, 앞브레이크, 뒷브레이크, 앞변속기, 뒷변속기 님들도 이제 다 조용하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랬는데 어머니는 고등어를 소금에 절여두셨나보다. 그리고 페달님은 갑자기 둘이 생각하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기가 막힌 생각을 떠올리셨나보다. 정적을 깨고 페달님이 말씀하신다.

— 어이, 거기 쇠사슬.
— 왜 그러나?
— 우리 이렇게 허송세월하지 말고 우리끼리라도 힘을 합쳐 달려보는 것이 어떨까?
—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 저기, 저 머리불빛이 영원히 잠들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네.
— 무슨 말?
— 왜 저 유명한 자전거 교본 <자전체의 회전에 관하여>에 보면 하늘은 스스로 도는 자전거를 돌려준다는 말이 있다고.
— 있지. 그런데?
— 우리 각자는 스스로 돌지는 못하지만 서로 도는 것을 도울 수는 있지 않겠나? 그러니 내가 자네를 돌릴 수 있게 나를 좀 돌려주게. 그러면 내가 자네를 돌려주겠네. 그러면 자네는 저 부실하기 짝이 없는 뒷동그라미를 돌리는 거지.

체인님이 생각해 보시니 그것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누군가 체인을 돌려만 준다면, 체인은 페달을 돌릴 수 있을 것이고, 제발 덕분에 부디 그렇게만 된다면, 페달은 체인을, 체인은 뒷바퀴를 굴릴 수 있을 것이다. 뒷바퀴가 구른다는 건, 오 그건 바로 자전거가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체인님은, 페달님이 냄새는 좀 나지만 진짜 하늘이 내린 천재 발바닥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본적이 없는 체인님이 뒷바퀴에게 점잖게 부탁하신다.

— 어이, 거기 뒷동그라미.
— 왜 그러나?
— 내가 발바닥을 돌릴 수 있게 자네가 나를 좀 돌려주게.

뒷바퀴님이 생각해 보시니 그것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서 뒷바퀴는 앞바퀴에게 부탁을 하신다.

— 어이, 거기 우리동네 찌그러진 동그라미 중에서 그나마 제일 동그란 앞동그라미.
— 왜 그러나?
— 그동안 내가 자네를 많이 구르게 하지 않았나. 자네를 굴려주느라 나는 이렇게 늙고 병들었다네. 그러니 이번에는 자네가 나를 좀 굴려주게. 자네가 나를 굴려주면 나는 쇠사슬을 굴리고, 쇠사슬은 발바닥을 굴리고, 그렇게만 되면 발바닥은 쇠사슬을, 쇠사슬은 나를 굴리는 거지. 생각해 보게. 내가 구른다는 건 우리가 달릴 수 있다는 말일세. 오오, 그렇게만 되면 우리는 이름 그대로 스스로 구르는 수레바퀴, 저 거룩하고 성스러운 이름의 자전거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말일세.

앞바퀴님이 생각해 보시니 그것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맞아, 그동안 나는 너무 편하게만 살아왔어. 내 힘으로 우리 자전거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뭔가 해본적이 없었지. 그저 선두에 서 있다고 고개만 뻣뻣이 들고 다녔지. 앞바퀴님은 이렇게 반성을 한 다음 어떻게 하면 자신이 구를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핸들님한테 부탁하신다.

— 이봐, 거기 앞막대기.
— 왜 그러나?
— 저기 뒷동그라미가 그러는데 말이야. 자네가 나를 돌려주면…

그러자 앞바퀴님의 말을 자르고 핸들님이 말씀하신다.

— 나도 다 들었네. 나도 듣는 귀가 있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나도 별뾰족한 수가 없더라고. 내 생각에는 말일세. 이 일에는 저 궁둥이가 딱일세. 저 궁둥이가 발바닥을 돌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네. 안 그런가? 짝궁둥이.

그러자 모든 부품님들이 안장님을 쳐다보신다. 그러나 안장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안장님이 침묵을 지키시자 여기저기서 안장님한테 성화가 시작된다.

— 어이, 거기 궁둥이. 뭐라고 말 좀 해봐.
— 어이, 거기 펑퍼짐한 궁둥이. 뭐라고 말 좀 해봐.
— 어이, 거기 펑퍼짐한, 꼭 오리 궁둥이 같은 짝궁둥이. 뭐라고 말 좀 해봐.

시간은 흐른다. 이윽고, 마침내, 드디어 그들 가운데 제일 학식이 높은 안장님이 입을 떼신다.

— 나도 그러고 싶어. 나도 달리고 싶어 미치겠다고. 향긋하고 달콤하고 감미롭고 부드러운 인간 궁둥이 냄새를 맡고 싶어서 미치겠단 말일세.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법이 없다네. 궁리한다고 나한테 없던 다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서로를 돌려준다는 건, 이건 마치 늪에 빠진 사람이 제 손으로 자기 머리를 잡아당겨 늪에서 빠져나가겠다는 거하고 똑같단 말이네. 우리는 이 저주받은 뫼비우스의 띠를 벗어날 수 없네. 하늘은 스스로 도는 자전거를 돌려준다지만 우리는 스스로 돌 방법이 없네. 우리는 지구처럼 자전할 수는 없네. 아, 저기 잠들어 있는 앞불빛이 깨어난다면 무슨 좋은 생각을 말해 줄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이님네들의 애타는 마음이 알 리 없는 헤드라이트는 잠들어계시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하신다.

— 어이, 거기 앞작대기. 머리불빛 좀 깨워봐.
— 이봐, 머리불빛 좀 일어나봐.

핸들님이 몸을 마구 흔들어 봤지만 그러나 이님네들의 애타는 마음을 알 리 없는 헤드라이트는 잠들어 계시다. 배터리가 가출해버린지 이미 몇 광년은 지났기 때문이다. 헤드라이트님은 외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신다. 실망한 부품님네들이 여기저기서 다시 버릇처럼 중얼거리신다. 그래야 무료함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 뫼비우스의 띠가 뭔가? 태권도 검은띠 같은 건가?
— 글쎄, 낸들 아나.
— 뭐, 아무튼 방법이 없다는 거지.
— 뭐, 결론은 그렇다는 것 같네.
— 저 짝궁둥이는 다 좋은데 말을 너무 어렵게 하는 게 문제야.
— 누가 아니래.
— 그럼 이제 뭐하지?
— 그럼 이제 어쩌지?
— 슬픈 일이군.
— 슬픈 일이지.
— 새는 좋겠네.
— 새는 좋겠다.

자전거님은 어제도, 오늘도, 아마도 내일도 가만히 제 자리에 서 계신다. 심심하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