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어느 영화 채널에서 해주는 아마겟돈을 보고 있다. 심심한 일요일이다. 애들 데리고 어디 강원랜드라도 가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에버랜드도 가 봤고 서울랜드도 가 봤으니까 남은 랜드는 강원랜드 밖에 없다는 말씀. 그건 그렇고.

영화를 보는데 하릴없는 무사의 여신께서 오셔서 영감을 나눠주신다. 나는 옆에서 한심한 영화를 심심하게 보고 있던 한심한 아들에게 묻는다. “엄마가 어디 가서 돈을 많이 가져 왔어. 그게 무슨 돈인지 알아?” 녀석이, 내 느닷없는 질문에 아빠가 갑자기 왜 이러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는 냉큼 답을 말해버린다. “아마 곗돈.” 농담이 썰렁할수록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는 것이다.

녀석이 나를 쳐다 본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막내는 옆에서 특유의 표정으로 아, 그러세요, 한다.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농담을 못알아 듣다니. 자부지불온이면 불역부호아.

아니다. 나에겐 희망이 있다. 나에겐 딸이 있다. 딸이 빵 터진다. 빵 터져서 부엌에서 낮설거지를 하느라 내 브레이크스루한 농담을 놓친, 지 엄마에게 달려가 나의 위트를 전한다. 물론 아내의 반응도 아들녀석들과 비슷하다. 아내부지불온이면 불역남편호아. 도, 개, 걸, 윷, 모, 다 좋지만 딸이 최고. 딸 나와라.

저 갸륵한 여식이 내 농담을 듣자마자 내뱉은 말을 이 시점에 아니 기록해 둘 수 없다. “아빠는 정말 똑똑한 거 같애.” 용돈 인상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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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새벽 두 시에 스팸 문자 받고 잠에서 깨어 쓴다. 퇴고와 교정은 나중에. 스팸 문자 보낸 새끼도 삼대가 불면증에 시달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