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있다!”
오늘이 레포트(혹은 리포트) 마감일이라는 걸 깜박한 대학생이 내 책장을 살피다가 말한다. 그는 A4 다섯 장 분량의 글을 급조하다가, 뭔가 참조할, 그러니까 베낄 게 필요했던 것이다.
다른 대학생이 그 모습을 안타깝게 고소꼬소해 하며, 무슨 과목이냐고 묻자, 대학생은 미학 어쩌구저쩌구, 라고 대답한다. 대답을 들은 다른 대학생은 이렇게 반응한다.
“내 친구가 듣지 말라고 한 과목이 있었지. ‘인간’이 들어간다. ‘윤리’가 들어간다. ‘이해’가 들어간다. 내 친구가 인간 윤리의 이해, 를 들었으니까.”
대학생은 피식 웃어보이고는 다만 내게 묻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없습니까?”
오, 네가 시학을 물었느냐. 있다, 시학. 우리집에 뼈대는 없지만 시학은 있다. 시학 말고, 양자역학도 있고, 철학도 있고, 컴퓨터 공학도 있고 다 있다. 나는 대학생에게 시학을 찾아준다. ‘가오’가 확 산다.
똥, 이라는 말만 들어도 까르르 웃던 것들이 어느 결에 자라서 이제 미학이니 윤리니 이런 낱말을 입에 올리다니. 무려, 가르친 보람이 있도다. 내친 걸음에 박사까지 가기다. 그러기다. 꼭이다.
여기까지 쓰니 한물 간, 유명한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감당하실 수 있겠느냐 물었습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