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볶는 커피집 ‘비미남경 이야기’

이동진 지음, <<꿈을 볶는 커피집 ‘비미남경 이야기’>>, YoungJin.com, 2004

내가 다닌 고등학교 앞에는 ‘태평양’이라는 이름의 다방이 있었다. 이름이야 너른 바다를 따서 한없이 넓었지만 그 안은 늘 아이들로 북적거렸고, 해서 좁아터졌고, 어두컴컴했고,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음악소리가 시끄러웠다. 그곳에서 나는 뻐끔 담배를 피웠고 커피를 마셨다. 다방커피. 그것도 없어 못 마셨다. 대개는 커피 한잔 시켜놓고 친구들과 오랫동안 ‘꼰대’들 흉을 보거나 ‘계집애들’ 얘기를 했다. 그러다가 당구장으로 농구장으로 혹시는 사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가야 하는 다락방 같은 술집으로 낮술을 마시러 가곤 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약속다방’이라는 이름의 다방이 있었다. ‘태평양’까지 가기가 귀찮을 때 더러 그곳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역시나 다방커피. 그곳에 모여 지리산으로의 겨울여행을 모의하기도 했고, 함께 지리산에 다녀온 친구의 부음을 듣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군대 옆에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다방’이 있었다. — 그래 나 방위다. 어쩔래? — 방위에게 딱 어울리는 특수임무를 맡은 나는 오전에 부대 밖으로 외출을 나왔다가 그 다방으로 기어들어가서 시간을 죽이곤 했다. 다방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할 줄 아는 몇 개 안 되는 재주 중의 하나인 금붕어와 대화하는 법도 그때 익힌 것이다. 플라스틱 해초가 넘실대는 어항속의 금붕어 신세나 팔팔 피끓는 청춘으로 군대 출퇴근해야 하는 내 신세나 거기서 거기라서였을까. 우리는, 내 말은 그러니까 금붕어와 나는, 어쩌면 말이 통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디 이뿐이랴. 그동안 내가 스쳐왔거나 나를 스쳐간 그 많은 역전다방, 독다방, 티롱다방, 음악다방들이여! 거기서 내가 마셨던 다방커피들이여! (웬 느낌표) 솔직히 커피 마실 돈 있으면 그 돈으로 소주 한 병 마시는 게 훨씬 나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미팅하면서 마시는 커피 값이 세상에서 젤로 아까웠다. 술이 몇 병인데…

질 좋은 커피에 대한 책을 읽으니, 질 나쁜 커피를 마셔대던 지난 시절이 떠올라 몇 마디 떠들었다. 각설하고.

이 책은 이대 앞 대한민국 스타벅스 1호점의 “맞은 편 계단 골목 밑”에서 ‘비미남경’이라는 이름의 커피집(혹은 커피 하우스)을 운영하는 저자의 커피사랑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백화점 입점이니 좋은 원두공급이니 하는 건 잘 모르겠고 커피에 관한 한 참 지극정성이다, 싶다. 몇 구절 인용하고 땡치고, 이따위 날림 독후감 쓰느니 가서 찐한 커피 한 잔 쓸쓸하게 마시며 청승이나 떨다가 오는 게 낫겠다. 사무실에서 멀지도 않고. 뭐 때마침 장마비도 추적추적 오고. 비온다고 술먹자는 놈도 없고.

“시중에서 유통되는 원두커피 중 블루마운틴이라고 이름 붙어있는 것의 90%이상은 가짜이거나 블루마운틴을 아주 소량만 섞은 블렌딩 커피일 가능성이 크다. 유명 백화점에서도 블루마운틴 블렌딩 커피를 100% 블루마운틴 진품인 양 당당히 팔고 있는 형편이니 일반 시중에서는 어련하겠는가.”

“우리가 잘 아는 ‘헤이즐럿 커피’의 ‘헤이즐럿’도 실은 커피의 한 종류가 아니라 개암나무의 열매이다. 게다가 헤이즐럿 커피의 경우 천연 개암나무 열매의 향이 아닌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화학적 향기를 입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커피 문화의 형성은 독특한 면을 지니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스턴트커피가 시장 점유율이 원두커피보다 높은 나라이다. 실제로 인스턴트커피가 시장의 95% 시상을 차지하고 있으니 가히 압도적인 우위를 점령하고 있다고 하겠다. 원두커피 시장인 5%도 스타벅스가 한국에 들어와 테이크아웃 커피의 열풍을 일으켜 그나마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스턴트커피의 편리함도 이유가 되겠지만 한국전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스턴트커피라는 상품이 세계최초로 상용화 된 나라가 한국이며 첫 시험 무대가 한국전쟁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p.s.
커피집 이름이 저 모양으로 해괴괴상요상망측한 이유는 이렇다더라.
“비미남경(妃美男慶)은 1998년 일본의 커피장인 호시노씨의 도움을 받아 재일교포 마쯔바라씨가 처음 세웠다. 커피집을 떠올리기 힘든 이 비범한 이름은 바쯔바라씨의 자녀들 이름을 한 자씩 따서 만든 것으로, 여기에는 자녀들이 훗날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곳이 자신의 뿌리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마쯔바라씨의 뭉클한 고국사랑이 담겨있다.”

빈정거려서 미안타만 참 고국사랑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비미남경이 뭐야. 비미남경이. 마케팅의 기본은 brand naming인데, 이름을 저 따위로 해가지고서는, 그래도 뭐 장사만 잘 된다고 하니 할 말은 웂지만서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