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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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이소, ‘무제(표류)’를 위한 드로잉 2000, 종이에 연필과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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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번째 작품은 병에 실어 바다에 떠나 보내는 편지에 대해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다시 각색한 것이다. 작가는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플라스틱 병 안에 넣어 멕시코만에 떠나보낸다. 플라스틱 병 안의 GPS장치는 바다를 떠다니며 그 정확한 위치를 송신하고, 작가는 전시장의 벽에 그 여행의 경로를 표시한다. 표류하는 병의 예상할 수 없는 여행경로를 따라, 관객은 바다에서 떠다니는 병의 경험을 상상할 것이다. 이 작품은 유한하면서도 무한한 것이, 배터리가 소진되면 그 병은 우리의 머릿속 지도에서는 사라지지만 그것이 지구 위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 작품 “무제(표류)”가 바다의 파도 위에 떠다니는 병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 안에서만 존재하기를 원한다. 작가는 위의 설명이 바로 이 작품의 본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병을 띄운 직후 찍은 공허한 바다의 사진 한 장만을 남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작가가 병에 장착한 GPS장치는 단순히 위치파악을 위한 도구로서보다는 존재와 존재의 연결고리로서, 그리고 소통에 대한 초라한 희망의 상징으로서 인 것 같다. 만일 그가 단순히 병의 표류지도만 그리고자 했다면 야나기 유키노리가 마루 위에 개미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선 드로잉을 그렸던 것과도 흡사한 발상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배터리의 수명을 예상해 일주일이나 이주일 이상의 소통을 예상했지만 그 병은 인간의 조종과 예측을 비웃기라도 한 듯 2시간 22분 동안만 신호를 보내고 사라져 버렸다. 사실은 인간의 지식으로부터만 사라졌고, 지금도 멕시코만 어딘가를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예정되어진 ‘행방불명’의 컨셉트는 이 프로젝트를 더욱 개념적이면서도 상상의 풍경으로 만드는데,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들 삶의 온갖 장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삶 자체의 무력함과 목적 없음이며, 사건과 사고로 가득한 우리 인생의 나약함이며, 또 인간의 의존성과 앞날에 대한 예측불허 같은 것이다.

─ 김선정(아트선재센터 부관장), http://www.foruma.co.kr/faWriter/View.asp?fNum=29

내가 혹은 당신이 저 병과 같아서 지금 어느 바다를 떠돌며 누군가를 향하여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병은 행방물병되고 소통은 두절되었다. 돌이켜보면 소통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날을 기점으로하여 나는 덜 괴로워지기 시작했던 거 같으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소통 따위가 다 무어란 말인가. 고백하는데 대부분의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당신들 탓이 아니다.

아침 풍경

단지에 안개 자욱한 아침
엽이 손 잡고 유치원 데려다 주는 길

_아빠, 이게 뭐야?
_응, 안개.
_안개?
_응, 공기중에 물방울이 둥둥 떠있는 거야.
_세상 사람들이 다 담배 피고, 연기를 내 뿜은 거 같아. 방귀도 뿡뿡 끼고.
_방귀는 왜 뀌어?
_그냥.

기여코 유치원까지 따라온 언이
제 형이 안으로 들어가자 저도 따라 들어가겠다고
시일야방성대곡

점 여섯 개를 기리는 노래 3

데드 픽셀 하나에 추억과
데드 픽셀 하나에 사랑과
데드 픽셀 하나에 쓸쓸함과
데드 픽셀 하나에 동경과
데드 픽셀 하나에 시와
데드 픽셀 하나에 아이고 어머니 나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