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리토스트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가 카페 차린다고 이름 지어달라고 하면 ‘카페 리토스트’라고 지어줄 것이다.

“‘리토스트’란 다른 나라 말로는 정확히 번역할 수 없는 체코 말이다. 그것은 벌려진 아코디언처럼 무한한 느낌을 나타내며 비탄.동정.후회와, 말할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감정을 모두 뭉뚱그려 넣은 말이다. […] 이런 경우에도 나는 세계의 어떤 말에서도 이 말에 대응하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말이 없이 인간의 영혼을 이해하기란 어느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건축학 개론>에서 승민이 서연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꺼져줄래” 였다. 상처받은 승민은 저런 모진 말로써 자기 안의 리토스트를 해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에 자기 아니면 죽고 못살 것 같던 승민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면서 졸지에 차인 서연의 리토스트는 더 가중되었다.

그런데 저런 이름으로 장사가 잘될까.

<건축학 개론>

봄비 내리는 금요일밤 따님을 모시고 영화관에 간다. 영화관에 가며 과제를 준다. 영화 줄거리를 다섯 문장으로 요약하라. 따님이 물으신다. 아빠, 우리 팝콘은 안 먹어요? 안 먹는다, 고 대답하는데 마음에 가볍게 지진이 인다. 약해지면 안 된다. 내가 지금까지 너 사준 팝콘값을 저축했으면 제주도에 땅을 샀을 것이다. 따님 옆에 남은 빈 자리 하나에도 영화 시작 직전에 관객이 비집고 들어가 앉는다. 영화를 본다.

(상영중)

영화가 끝나고 포스터가 죽 붙어 있는 긴 복도를 걸어나오는데 따님이 불쑥 말씀하신다. 이걸 어떻게 다섯 줄로 줄여? 난 못해. 맞다. 과제 내 준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까짓 거 요약하거나 말거나 내가 알 게 뭔가. 이십사 년 일 개월의 참회를 한 줄에 줄인 윤동주도 있는데 영화 한 편 다섯 문장으로 줄이는 게 뭐가 어렵다구. 팝콘 사줬으면 아까울 뻔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번 과제 쉽지 않겠다 싶다. 10대 소녀가 첫사랑 얘기를 어떻게 다섯 문장으로 줄여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 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다섯 문장도 너무 많다. 117분 짜리 영화를 이제 닳고 닳은—슬프다—나는 한 줄에 줄인다. “썅년”이 “썅년”이 아니었다.

밀어내기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긴다면 뭐라고 남겨야 하나 생각 중. 예컨대 칼은 갈아 쓰고, 옷은 빨아 입어라, 같은 것.

오늘의 문장

“1밀리그램의 오차도 없이, 언어가 정확한 중량을 지니고 있다.” p.47

─ 에쿠니 가오리, <낙하하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