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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Archives: October 2012
스크린 골프
명절적으로 또 명절을 보내고 엊그제 오랜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은 스크린 골프를 치고 나는 그들의 게임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골프존’이라는 이름의 골프 시뮬레이션 솔루션은 매타마다 쇠몽둥이를 휘두를 선수를 다음과 같은 식으로 알려주었다. “김프로님 스윙할 차례입니다.” “이프로님 퍼팅할 차례입니다.” 김프로, 이프로는 게임 시작 전에 직원이 입력해준 호칭이었다. 골프업계에서는 프로가 의전 호칭인 모양이었다. 나는 개새끼라고 입력하면 저 기계가 개새끼님 스윙하실 차례입니다, 라고 알려주느냐고 당연한 걸 물었다. 이어서 따위님 퍼팅하실 차례입니다, 따위님 뻐킹하실 차례입니다, 따위의 연상이 이어졌으나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오비를 낸 친구 하나가 더럽게 안 맞는다며 투덜거릴 때 시의적절한 문자를 받았다. 며칠 뒤 예정돼 있는 모임에서 스크린을 하기로 했는데 참석 가능하냐고 묻는 메시지였다. 그렇다면 다음 기회에 보자고 답신을 보냈다. 그렇다면 다음 주에 다른 종목의 모임을 마련하겠다는 회신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때 보자고 답신을 보냈다.
두번째 게임 18홀, 나는 임프로의 마지막 퍼팅을 대신 쳐보는 영광을 얻었다. 그건 누구라도 한번에 넣을 수 있는 공이었고, 그래서 나도 한번에 넣었지만 최종결과는, 내 환상적인 버디적 퍼팅에도 불구하고, 트리플 보기였다. 이후 닭갈비를 먹었고 당구를 쳤고 문어를 먹었고 장소를 옮겨 새우구이를 먹었다. 골프채 얘기와 자식 얘기와 늙어 병드신 이쪽저쪽 부모님들 얘기와 원청에 하청에 돈 떼인 얘기와 다른 친구들 얘기 등을 나누었다. 나도 여간해서는 안 하던 얘기를 털어놨다. 대리기사가 모는, 갈 때도 얻어타고 갔던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딸이 자기 방에 잠들어 있는지 확인했고 처용처럼 안방문을 열고 아내 외에 아들들 그림자 두 개가 더 있는지 확인했다.
다음 날에는 의정부에 갈 일이 있어 의정부에 다녀왔다. 가는 길에 부대찌개 좋아하는 아들 녀석들에게 원조 부대찌개 맛을 보여주려고 아이들을 달고 다녀왔다. 그러나 막상 의정부에 가서는 어느 집이 진짜 순 오리지날 원조 부대찌개집인지 알 길이 없어 그냥 주차하기 편한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진짜 순 오리지날 원조 부대찌개를 먹었다. 몸 상태는 하루 종일 시체 같았다. 그리고 오늘 다 저녁에 김프로의 싱거운 전화를 받았다. 말은 안 했지만 녀석이 왜 싱거운 전화를 했는지 알 거 같았다. 이렇게, 그렇게, 저렇게, 이래도, 그래도, 저래도……(마지막 문장은 완성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