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가 甲이다

자식 한 분은 만화 보고 계시고, 다른 자식 한 분은 아이패드 하고 계시다. 차마 아름다운 광경을 보니 가학취미가 발동하여 두 분을 강압—물론 강압은 없었다. 오, 정수장악회여—적으로 모시고 대저, 문장에 대해서 아주 수준 높게 속성으로 설명해드린 다음에 5분 내로 각각 아무 거나 세 문장 씩을 써서 바치시지 아니 하시면 안타깝지만 이 비정한 애비가, 눈물을 머금고, 만화고 아이패드고 뭐고 다 금지시켜 드리겠다고 선언하였더니 자식놈님들께서 다음과 같은 명문장들을, 일필휘지로, 빠름, 빠름, 빠름, 그러니까 롱 텀 에벌루션의 속도로, 작성하시고는, 자기들끼리 킬킬 거리시면서, 뭔가 승리감에 젖어, 다시 하시던 일에 매진하시는 고로 나는 사이클 좇던 미니벨로 마냥 씁쓸하게 입맛만 떱하고 다시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분들께서 성의껏 급조하신, 거룩하신 문장님들을 만나 보자.

슬램덩크는 만화이다.
슬램덩크는 재미 있다.
슬램덩크는 농구 이야기이다.

아이패드는 애플이라는 화사에서 만든 기계이다.
아이패드는 성능이 좋다.
아이패드는 재미 있다.

아, 독서고 교육이고 다 필요 없다. 고저 재미가 甲이다. 재미신을 영접하라.

낙엽의 풍장

가을이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진다. 산에 떨어진 낙엽은 눈과 비와 바람과 햇살과 어둠을 만성적으로 누리며 저를 떨군 나무 밑에서, 아니면 최소한 그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오랜 세월을 두고 분해된다. 이것은 한때 남부럽지 않게 푸르렀던 낙엽에게 주어지는 자연의 마지막 제의인 셈인데 나는 이것을 낙엽의 풍장이라고 부른다. 도시의 낙엽은 사정이 다르다. 도시의 낙엽은 분주한 행인 1, 2, 3호의 발에 밟히고, 질주하는 자동차에 치이고, 청소부의 비질세례 받다가, 결국에는 쓰레기 봉투에 담겨 어디론가 끌려간다. 저의 모태였던 나무와는 생이별을 한다. 끌려간 낙엽들이 화장을 당하는지 매장을 당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교하는 아이들을 유혹하며 붕어빵을 파는 리어카 옆에서 곧 트럭에 실려갈 운명의 낙엽들이 쓰레기 봉투에 감금된 채 마른 비명을 삼키고 있는 지금은 다시, 회한처럼, 저주처럼, 가을이다. 찬바람이 불고, 낙엽이 진다. 당신은, 내가 떠난 줄 알면 된다.

착한 일 III

아이폰으로 흥미롭게 듣고 있던 어떤 녹음 파일의 재생이 중단되는 순간, 나는 안다, 곧, 아내 표현에 의하면, 귀곡산장 같은 느낌적 느낌의 내 전화벨이 울리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소위 이른바 날도 화창한 ‘불금’인데 이따 저녁 때 술이나 한 잔 하자는 친구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오리라는 것을. 그런데 아니었다. 오늘도 친구 놈들은 다들 스크린골프나 치러 갈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던 나는 그 이하를 듣게 될 것이다. 전화를 건 여자는 곧바로 원고를 읽기 시작한다. 대충 이렇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IBK 기업은행의 협력회사인 아무개 캐피탈인데요, 이번에 고객님들을 위해서 저렴한 금리로 대출해 드리는 상품을 안내해 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천 만원까지는 간단한 상담 후에 바로 대출을 해드립니다. 혹시 필요하신 자금이 있으세요?”

내가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은가? 안 그래도 은행에 돌아온 어음을 막느라 자금이 급하게 필요하던 차인데 마침 전화 잘 하셨다. 기왕 빌려주는 김에 10억원만 빌려주시라, 했을 것 같은가? 아니면 지금 담배값마저 떨어져 콱 죽어버릴까 생각중이었는데 사람 살리는 셈치고 2,700원만 입금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을 것 같은가? 그러면 귀찮은 스팸 전화야 금방 끊나겠지만 이 어찌 착한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입만 열면 착한 일을 하는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간단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유산을 많이 받아서요.” 내 대답을 들은 텔레마케터는 웃었다. 그 웃음이 씁쓸한 것 같기도 하고 기가 막혀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고보니 이것은 착한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착한 일 II

오늘도 난 또 착한 일을 했다. 일전에는 도서관에서 착한 일을 했는데 이번에는 병원에서 간호사들을 빵 터지게 만들어 주었다. 그들이 나를 보며 저런 환자만 있으면 간호사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이번에도 내 궁예적 눈에 빤히 보였다.

암센터 19호 휠체어에 앉아 있던 중년 여자는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검은 색 후드티를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그녀의 아들은 병색이 완연한 엄마 옆에서 아이폰에 코를 처박고 카카오톡을 하고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여자는 아들이 자신의 상태에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서운했고 아들은 자신이 놓인 괴로운 상황이 마냥 괴로웠다. 착하게 사는 건 어렵다.

얼마 전 산에서 만난 노인은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고 나면 호르몬제를 복용하더라도 15년 밖에 못산다고 말했다. 전망대에 앉아 산 아래 가을 풍광을 감상하고 있던, 역시 그날 산에서 처음 만난 여자는 그 얘기를 듣고 기분이 언짢아졌다. 5년 전에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만간에 병원에 갈 일이 있으니 의사에게 물어봐주겠다고 그 여자에게 약속 아닌 약속을 했고, 오늘이 그날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10호 진료실을 나오기 전에 나는 의사에게 그 노인의 말이 과연 믿을만 한 것인지 물었고 의사는 정색을 하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나의 워딩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갑상선을 제거하고 호르몬제를 장기복용하면 효과가 떨어지나요?” “그렇죠? 아니죠? 제가 얼마 전에 산에서 도사 할아버지를 만났는데요, 그 할아버지가 그러시더라구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문제의 간호사들은 도사라는 단어에서 빵 터졌다. 착한 일 하기 되게 쉽다.

조만간에 산에 가서 그 여자를 만나 도사 할아버지 말 다 뻥이라고,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라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고 얼굴 마저 기억하지 못하니, 수명이 10년 밖에 남지않았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실의와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여자를 다시 만날 일이 딴에는 난감하기는 퍽이나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