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 II

오늘도 난 또 착한 일을 했다. 일전에는 도서관에서 착한 일을 했는데 이번에는 병원에서 간호사들을 빵 터지게 만들어 주었다. 그들이 나를 보며 저런 환자만 있으면 간호사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이번에도 내 궁예적 눈에 빤히 보였다.

암센터 19호 휠체어에 앉아 있던 중년 여자는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검은 색 후드티를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그녀의 아들은 병색이 완연한 엄마 옆에서 아이폰에 코를 처박고 카카오톡을 하고 있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여자는 아들이 자신의 상태에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서운했고 아들은 자신이 놓인 괴로운 상황이 마냥 괴로웠다. 착하게 사는 건 어렵다.

얼마 전 산에서 만난 노인은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고 나면 호르몬제를 복용하더라도 15년 밖에 못산다고 말했다. 전망대에 앉아 산 아래 가을 풍광을 감상하고 있던, 역시 그날 산에서 처음 만난 여자는 그 얘기를 듣고 기분이 언짢아졌다. 5년 전에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만간에 병원에 갈 일이 있으니 의사에게 물어봐주겠다고 그 여자에게 약속 아닌 약속을 했고, 오늘이 그날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10호 진료실을 나오기 전에 나는 의사에게 그 노인의 말이 과연 믿을만 한 것인지 물었고 의사는 정색을 하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나의 워딩은 대충 다음과 같았다. “갑상선을 제거하고 호르몬제를 장기복용하면 효과가 떨어지나요?” “그렇죠? 아니죠? 제가 얼마 전에 산에서 도사 할아버지를 만났는데요, 그 할아버지가 그러시더라구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문제의 간호사들은 도사라는 단어에서 빵 터졌다. 착한 일 하기 되게 쉽다.

조만간에 산에 가서 그 여자를 만나 도사 할아버지 말 다 뻥이라고,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라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고 얼굴 마저 기억하지 못하니, 수명이 10년 밖에 남지않았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실의와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여자를 다시 만날 일이 딴에는 난감하기는 퍽이나 난감하다.

Posted in 블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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