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땀을 흘려가며 한창 낫질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이거 마시세요, 한다. 허리 펴고 뒤돌아보니 어느 모르는 예쁜 여자 아이가 종이컵을 내민다. 마셔보니 시원한 물이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 아니 이거 순 맹물이잖아, 소주를 달라고, 소주를, 소주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한다. 여자 아이는 별 이상하고 한심한 어른 다보겠다는 표정으로, 아니 이 시간부터 술을 마시면 어떡해요, 하더니 저만치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벌초가 끝나고 지루한 문중회의도 끝나고 묘역 아래 느티나무 숲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시간, 아까 그 여자 아이, 부지런히 잔심부름을 하고 있다. 나는 이승철의 사랑하고 싶어, 를 흥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