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신

나는 환장해본 경험은 몇 번 있지만 그게 다다. 환장을 넘어 실신까지 가본 적은 없다. 실신은 이를테면 내 괴로움을 과장하는 하나의 이미저리였을 뿐이다.

청소년기에는 어머니가 까무러치시는 걸 본적이 있다. 사지가 마비되고 눈동자가 돌아가던 어머니를 주무르던 기억이 난다. 우황청심환이라는 약의 존재를 그때 처음 알았다.

화장장에서 고인의 관이 화로로 들어갈 때 그걸 지켜보다가 힘없이 무너져내리던 어떤 누나 생각도 난다. 혀가 말려 기도를 막지 않도록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어제 딸아이가 학교에서 실신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의사는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병명을 진료확인서에 적어주었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명을 검색해본 아내는 그 약이 향정신성 약물이라고도 했고 수면제라고도 했다.

유튜브에서 산울림의 회상을 여러 번 들었다. 임지훈 버전으로도 듣고 <또하나의 약속>에 나온 여리목 버전으로도 들었다. 혼자 어쩔 수 없었다. 미운 건 오히려 나였다.

그렇게 우정은 추문이 된다

친구는 관계의 이름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그렇게 우정은 추문이 된다, 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물과 술과 안주와 위산과 위장과 식도를 치욕처럼 토하고 돌아와 책상 앞에 앉은 봄밤, 책상벽에 붙여둔 포스트잇이 떨어져 한 장 낙엽으로 방바닥에 뒹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