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님이 크게 노하셨다, 자기 수라상에 올라갈 조기를 먹는다고. 하여 내 자식의 목구멍에 가시를 팍, 박아넣으셨다. 그것도 첫 술에. 바다의 왕이라는 양반이 하는 짓이 영 옹졸하시다. 나는 이제부터 서양의 포세이돈을 섬길 것이다. 묵호에 가서 조기를 잡아 산 채로 제물로 바칠 것이다.
녀석이 괴로워 하길래 입을 벌려 숟가락으로 혀를 누르고 들여다 보니 동굴 입구에 황금가시가 박혀 있었다. 나머지 조직원들을 동원하여 녀석의 사지를 포박한 연후에 핀셋을 넣어 뽑으려는데 녀석이 구역질을 하는 바람에 1차 시술에 실패했다. 나는 내가 화타가 아니라는 서글픈 현실을 자각하고 동네 산부인과 옆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병원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목에 걸린 가시 빼는 법’을 검색해보니, 날 계란을 먹어라 가시도 술술 넘어간다, 아니다 식초를 마시면 가시가 녹는다 식초 맛있다, 아니다 김치를 씹지말고 오물거리다가 삼켜라 김치가 가시를 끌어안고 논개처럼 진주 남강으로 투신한다, 아니다 밥 한 숟가락을 삼켜라 뭐 든지 밥이 최고다, 이런 식의 민간요법이 나열돼 있었다. 나는 딸라빚을 내서라도 병원에 가라 응급실이라도 달려가라는 개중 마음에 드는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의사의 단순한 시술과 내 화려한 의술의 외견상 차이점은 딱 하나, 녀석의 입을 벌리게 하는 방법 뿐이었다. 의사는 녀석에게 10초 동안만 아Ah 소리를 내라고 시킨 다음에, 파이프렌치를 입에 넣어 외견상 손쉽게 가시를 뽑았다.
녀석에게 입을 크게 벌리라고 말하는 대신에 아Ahhhhhh 소리를 내라고 시켰으면 나도 가시를 뽑을 수 있었을까? 안다, 무식한 소리라는 거. 식도에 구멍나면 감염의 위험이 있는데 이거 생각보다 시리어스한 상황이라는 것도 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밥 먹다 말고 아이 데리고 허겁지겁 병원에 달려가야했단 말인가. 내 식은 밥은 누가 다시 덥혀주겠는가. 병원 대기실에서 <마당을 나온 암닭>을 읽은 것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