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잔해

육신에서 언어가 빠져 나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나는 늘 이런 상태를 꿈꿔 왔다. 언어 없는 의식. 그저 짐승. 그저 물질. 잔해.

오늘의 문장

“몸은 몰라도 마음만은 서로 말고는 달리 갈 데가 없으니 헤어지고 나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는가 싶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김정선, 《동사의 맛》, 가다/오다 편 중에서

2일

사정이 있어 아내가 먼저 M6 좌석을 예약했다. 영화관 어플이 M7을 허하지 아니하여 나는 M8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우려대로 결국 누군가가 M7을 예약하며 부부지간을 갈라놓으려 했다.

영화관 창구에서 M6 자리를 그때까지 비어 있는 M9로 바꾸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창구 직원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는 듯 그렇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따위 부부는 M8, M9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가 들어가 앉았을 때 M7에 먼저 앉아 있던, 잘 생겨도 못생긴 남자는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그리하여 따위 부부는 좌우간격을 널직하게 벌린 자리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아내가 정우성은 역시 멋있다고 그랬다.

1일

아내는 성당 갔고, 나는 타임라인 읽는다. 딸은 학원 갔고, 큰 아들은 어디 갔는지 모른다. 막내는 집에 있다. 저녁은 먹었다. 재활용 쓰레기 버려야 한다.

낮에는 아내와 노브랜드와 한가람문구와 다이소에 가서 놀았다. 스벅 커피도 마셨다. 제트스트림 1.0mm 리필심 두 개, 로디아 긴 메모장 검정 거 두 개, 오공 본드 한 개 따위를 샀다. 기타 쓸모 없는 것들을 만지작거렸다.

따위넷에 관리자 계정으로 로그인 해서 워드프레스와 플러그인을 업데이트 했다. 성당 간 아내 돌아올 시간이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나가자.

말일

1.

아내는 빨래를 널고 있고 나는 삼겹살을 굽고 있다. 장차 미술을 하겠다는 딸은 말일이라고 번화가로 놀러 나갔다. 장차 음악을 하겠다는 아들은 어디로 놀러 나갔는지 모른다. 장차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막내는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저녁 먹고 막내는 자기 방에 들어 갔다.

아내는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교신 중인 것 같다.

나는 캔맥주를 하나 까마시며 자세와 제스처와 기호와 상징에 관한 책을 읽는다. 낮에는 빈둥거렸고 알렉산더 대왕을 읽었고 부두교에 관한 책을 읽었고 남태평양의 타이티를 구글지도에서 찾아 보았고 노래를 몇 곡 들었다. 빠롤이니 시니피에니 하는 이상한 단어들을 오랜만에 생각했다.

2.

아내가 막내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라고 시킨다.

“저기 저 소파에서 빈둥거리시는 분을 시키시죠, 어머니.”

“아빠는 저녁 차렸잖아.”

나는 괘념치 아니하고 하던 거 계속한다. 세계 뉴스 보는 거 계속 본다. 워싱턴 노숙자 얘기, 이란의 데모 얘기 본다.

3.

쿠션 베고 소파에 누워 있는데 아내가 새로 빨아 갈아 끼운 쿠션 커버에 때묻는다고 수건을 덧대준다. 덜마른 수건이다. 나는 인상을 쓴다. 아내가 다른 걸 대준다. 러그다. 나는 더 심하게 인상 쓴다. 나는 무릎담요를 쿠션에 댄다. 아내가 퇴각한다.

“헐, 기언아,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 기언아.”

막내가 지 엄마에게 휴지 가져다 주고 저 하던 거 하러 가다가 쇼파 위의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저기 저 쇼파에 누워계신 분은 뭐하시고 나한테…”

나는 괘념치 아니하고 하던 거 계속한다. 삼박자 축복을 검색한다. 예수 잘 믿으면 영혼을 구원뿐 아니라 물질과 건강까지 얻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