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이씨, 다 뱉었어.

삼켜. 삼켜. 삼켜.

아내가, 말못하는 병든 짐승에게 억지로 뭐라도 먹이며 하는 소리다.

뭐냐, 이게. 다 흘리고. 이그.

아이고오. 조금만 먹어. 알았지?

미수가루

밤에 보니 식탁 우에 콩가루가 놓여 있다.

아침이다. 사모님이 말씀하신다.

“저거 미수가루야.”

그렇구나. 콩가루인 줄 알았는데 미수가루구나.

“그래? 타줘.”

“나 어떻게 타는지 몰라. 타먹어.”

그럴 수도 있지. 미수가루 타는 법 모를 수도 있지. 나는 슬프다.

아, 내가 저따위한테 너무 야박하게 굴었군, 하고 반성하신 사모님 미수가루를 타다 주신다.

“야.”

그저, 고맙습니다, 하고 먹으면 될 걸 나는 또 묻는다.

“잘 저었어?”

이번에는 국물도 없다.

“저어 먹어.”

봄이다. 미수가루 먹는다.

아래 문자는 사이시옷용 시옷이다.

ㅅㅅㅅㅅㅅㅅ

어떤 잔해

육신에서 언어가 빠져 나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나는 늘 이런 상태를 꿈꿔 왔다. 언어 없는 의식. 그저 짐승. 그저 물질. 잔해.

오늘의 문장

“몸은 몰라도 마음만은 서로 말고는 달리 갈 데가 없으니 헤어지고 나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는가 싶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김정선, 《동사의 맛》, 가다/오다 편 중에서

2일

사정이 있어 아내가 먼저 M6 좌석을 예약했다. 영화관 어플이 M7을 허하지 아니하여 나는 M8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우려대로 결국 누군가가 M7을 예약하며 부부지간을 갈라놓으려 했다.

영화관 창구에서 M6 자리를 그때까지 비어 있는 M9로 바꾸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창구 직원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는 듯 그렇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따위 부부는 M8, M9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가 들어가 앉았을 때 M7에 먼저 앉아 있던, 잘 생겨도 못생긴 남자는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그리하여 따위 부부는 좌우간격을 널직하게 벌린 자리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아내가 정우성은 역시 멋있다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