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

오늘도 난 착한 일을 했다. 카운터에 무료하게 앉아 있던 도서관 사서를 킥킥거리게 만들어 주었다. 그 사서가 저렇게 재미 있는 남자 있으면 당장 시집가겠다, 고 생각하는 게 내 눈에 보였다. 내가 궁예 형한테 배운 관심법으로 다 봤다. 물론 그 사서는 뭘 모른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마를렌느 과자를 치사하게 혼자 다 먹었다. 마르렌느 과자를 치사하게 혼자 다 먹던 마르셀 프루스트가 지가 어려서 먹었던 그 “과자 때문에 되살아난 이미지, 시각적 기억이, 이 맛의 뒤를 따라 내 자아에까지 이르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게 역시 내 궁예적인 멘탈 애꾸눈에 뻔히 보였다.

나는 오늘 오이소배기 속 양념 부추 먹다가 어떤 기억이 목구멍에 걸리는 바람에 켁켁, 거렸다. 나는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린 그 기억이 부추 맛의 뒤를 좇아 내 오장육부적인 자아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 내일은 또 무슨 착한 일을 할까.

며칠 전 식탁 머리에서 아이들에게 해줬던 얘기인데 나중에 또 써먹으려고 에버노트에서 여기에 꺼내둔다.

“실제로 상대적인 크기까지 고려해서 태양계를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교과서에 여러 쪽을 펼칠 수 있는 면을 만들거나, 폭이 넓은 포스터용 종이를 사용하더라도 도저히 불가능하다. 상대적 크기를 고려한 태양계 그림에서, 지구를 팥알 정도로 나타낸다면 목성은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야만 하고, 명왕성은 2.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야만 한다(더욱이 명왕성은 세균 정도의 크기로 표시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도 없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pp.37-38

카나다라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알고 있는 가나다라의 순서는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종이 생각했던 원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카나타라마바사아자차가타파하.

작은 ㅋ은 자신이 1등을 차지하고 있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다른 자음들도 모두 작은 ㅋ을 큰형님으로 모시며 존경을 표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세종이 작은 ㅋ을 조용히 불러 물었다.

"내가 너희들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시고자 함이 아니십니까?"
"그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고 실제 목적은 따로 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내가 심심해서다."
"무슨 말씀이시온지..."
"아무튼 ㅋ아!"
"말씀하십시오, 마마."
"미안하지만 네가 ㄱ과 자리를 좀 바꿔야겠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긴 말하고 싶지 않구나. 나로서도 오래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심심해서 내린 결론이니 더는 따지지 말거라.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면 너는 다시 맨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때는 나는 죽고 없을테니 너는 내 무덤에 와 절 한번 해주기 바란다. ㄱ에게는 이미 얘기를 해두었으니 그리 알고 그만 물러가라."
"마마?"
"그만 물러가라고 했다."
"그때가 언제 이오니까?"
"그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물러가라."

작은 ㅋ이 어전을 물러나 자리에 돌아와보니 과연 작은 ㄱ이 떡하니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작은 ㅋ은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했으나 세종의 명이 하도 지엄하여 어쩔 도리가 없었다. 며칠 후 한글이 반포되었고 이후 한글의 역사는 알려진 바와 같다.

한글 창제 후 몇백년이 흘렀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송창식이라는 가수가 가나다라라는 노래를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이

가나다라마자사아자차카타파하

라고 노래를 부를 때마다 작은 ㅋ은

카나다라마바사아자차가다파하

라고 구호를 외치며 온몸으로 투쟁했으나 아무도 귀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 작은 ㅋ은 외로웠다. 그렇게 통한의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작은 ㅋ은 세종이 말하던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듯 작은 ㅋ이 언젠가부터 저 홀로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작은 ㅋ은 컴퓨터와 휴대폰은 물론 지상파 텔레비전까지 점령했다. 물론 혼자 쓰이는 글자는 작은 ㅋ만은 아니었다.

ㅎㅎㅎ, ㄱㅅ, ㅇㅇ, ㅎㄷㄷㅍ따위가 그런 예였다. 자음 뿐만 아니라 ㅜㅜ나 ㅠㅠ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음도 그동안 형식적으로나마 달고 다니던 ㅇ을 떼어버리고 독립을 이루는 현상이 나타났다.

작은 ㅋ은 이제 원래 자기 자리였으나 작은 ㄱ에게 빼았겼던 맨 앞자리를 찾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더 지체하다가는 지금까지 안중에도 없던 ㅎ에게 맨 앞자리를 다시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은 ㅋ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 단단히 했다. 드디어 달빛조차 없는 어두운 밤에 작은 ㅋ은 작은 ㄱ을 찾아가 제 가슴에 몇 백년 동안이나 품고 있던 작은 칼을 뽑아 작은 ㄱ의 가슴에 칼빵을 놓았다.

세종, 보고 있나?

날이 밝았다. 쿠데타가 성공한 줄 알았던 작은 ㅋ은 사람들이 자신을 느닷없이 ㄱ이라고 부르고 쓰는 것을 알고는 일이 잘못돼도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닳았다. 작은 ㅋ에게는 이제 칼이 없어 외견상 작은 ㄱ으로 보인다는 게 함정이었다.

덕분에 권좌에서 쫓겨난 작은 ㄱ만 신이 났다. 맨 앞자리도 여전히 저의 것이요, 가슴에 꽂혀 있는 ㅋ의 칼 덕분에 외견상 ㅋ으로 보여 홀로 쓰이는 영예도 저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작은 ㅋ은 작은 ㄱ을 찾아가 다시 자신에게 칼빵을 놔달라고 애원을 했으나 작은 ㄱ은 콧방귀를 뀌며 작은 ㅋ처럼 웃었다.


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끝)

아빠

내 딸은 물론 나를 아빠라고 부른다. 아이가 말을 배워 나를 아빠라고 처음 불렀을 때 나는 감격했던가. (아니면 내가 네 아빠라는 걸 어디 가서 소문내지 말라고 했던가.) 감격도 한두 번이지 계속 아빠로 불리우면 무감각해지게 된다. 내 딸이 나의 딸인 건 아주 당연한 일이어서 나는 내가 저의 아빠라는 사실을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사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내 스마트폰이 보이지않아 딸의 전화기를 빌려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적이 있다. 아이의 전화기에 내 번호가 단축키로 할당되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할당돼 있다면 몇 번인지 알 리가 없는 나는 그 원시적인 기계로 내 번호를 차례대로 누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발신상태로 전환되는 딸의 휴대폰에 ‘아빠’라는 말이 떡하니 떴다. 그때다. 그때 나는 내가 내 딸의 아빠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했다. 맞다. 내가 이 녀석의 아빠였지, 아빠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조금 전에 수학여행 간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설악산 산신령이 아빠 친구니까 예의를 잘 갖추어 안부인사 정중히 여쭈라고 답신을 해주었다. 그러고나서 지금 아빠, 라고 고요하게 발음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