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물론 나를 아빠라고 부른다. 아이가 말을 배워 나를 아빠라고 처음 불렀을 때 나는 감격했던가. (아니면 내가 네 아빠라는 걸 어디 가서 소문내지 말라고 했던가.) 감격도 한두 번이지 계속 아빠로 불리우면 무감각해지게 된다. 내 딸이 나의 딸인 건 아주 당연한 일이어서 나는 내가 저의 아빠라는 사실을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사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내 스마트폰이 보이지않아 딸의 전화기를 빌려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적이 있다. 아이의 전화기에 내 번호가 단축키로 할당되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할당돼 있다면 몇 번인지 알 리가 없는 나는 그 원시적인 기계로 내 번호를 차례대로 누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발신상태로 전환되는 딸의 휴대폰에 ‘아빠’라는 말이 떡하니 떴다. 그때다. 그때 나는 내가 내 딸의 아빠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했다. 맞다. 내가 이 녀석의 아빠였지, 아빠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조금 전에 수학여행 간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설악산 산신령이 아빠 친구니까 예의를 잘 갖추어 안부인사 정중히 여쭈라고 답신을 해주었다. 그러고나서 지금 아빠, 라고 고요하게 발음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