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온 아내가 말했다.
“잡채가 얼었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스티브 잡채?”
그러자 아내가 웃었다.
Category Archives: 블루 노트
오늘의 깨달음
나는 고릴라와 침팬지와 오랑우탄을 구별할 줄 모른다.
오늘의 문장
“런던 사람들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우울을 들이마신다.” (p.348)
***
“요즘 내 인생은 권, 장, 쪽으로 세어지며, 달력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네.”(p.411)
“당신이 명심해둬야 할 것이 있소. 젊은 숙녀들이 ‘모든 남자는 짐승’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고독한 짐승일 거라른 사실이오.”(p. 456)
요즘 음원과 옛날 노래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 아이폰으로 듣던 어느 녹음 파일의 재생이 종료되고 자투리 시간이 좀 남았다. 세상이 하 시끄러우니 아무 소리나 들려오라고 이어폰의 플레이버튼을 누른다. 무슨 소리가 난다. 하필 정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동화가 안 되는 음원이다.
내 계정으로 딸이 다운로드 받아놓은 음원이다. 원, 투, 쓰리, 포, 화이브, 식스, 세븐, 에잇, 나인. 이런 가사가 반복적으로 들린다. 아이폰을 꺼내 화면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누구의 무슨 음원인지 알 길이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으니 그냥 참고 듣는다. 이어지는 음원은 아는 노래이다. 이제야 정서가 좀 안정되는 것 같다. 노래 제목은 말해 주지 않겠다. 그렇다고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서산 아래, 처럼 아주 먼 곳까지 되돌아간 노래는 아니니, 설마 당신이 걱정할 리는 없겠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 계정으로 딸이 아내 컴퓨터에 다운로드 받아놓은 음원을 내 아이폰에 쑤셔 넣은 자는 물론 나다. 내가 그랬다.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시대에 영 낙후 되지 않으려면 최신 음원은 좀 들어 둬야하지 않겠냐는 문명인의 자기계발 의식의 발로 때문인지 아니면 덕분인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어제 밤에는 계정에 노래 다 떨어졌다고, 노래 더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느냐고, 노래 더 다운로드 받게 해주면 십 년 동안 설거지 하겠다고, 딸이 요청해 오는 걸 개무시 해 놓은 터라 아비된 자의 마음이 천 길 깊이로 쓰라리고 부대끼고 나부끼어 낮에 계정에 40곡 다운로드 할 수 있게 거금을 들여 결제해두었던 터였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이번 정차할 정류장과 다음 정차할 정류장 사이에서 부녀지간의 대화와, 부녀지간의 관계와, 부녀지간의 노래와, 부녀지간의 거리 따위에 대해서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신곡 듣기는 정말 싫은데. 야, 그냥 네가 옛날 노래 좋아하면 안 되겠니? 응.
노예 버스
분당과 서울을 오고 가는 9401번 좌석버스에는 아침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실업자와 과거 실업자와 장차 실업자들이 올라탄다. 이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가는 노예와 통로에 서서 가는 노예로 신분이 나뉜다. 몇몇 노예들은 아이폰을 꺼내 640 x 480 크기의 창을 통해,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세상과 소통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노예들은 그냥 잔다. 출근 시간이면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버스전용차로는 노예버스전용차로가 된다. 자도, 자도, 자도, 서울은 멀다. 5월의 아침 햇살이 눈부셔 지, 지, 지, 지, 지, 나는 잠을 깬다. 부조리는 한물 갔기 때문에 내가 뫼르소처럼 살의를 느꼈을 리는 만무하다. 요새는 <나는 가수다>가 대세이니, 산천이 의구한 것과도 같이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은 여전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너, 가 없으니 내 인생은 전쟁 같지도 않고 내 사랑은 위험하지도 않다, 고 생각하기로 한다. 오늘 아침에는 종로2가 YMCA 앞 버스 정류장에서 아침마다 빵을 먹던 노숙자가 보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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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에 아이폰에 끄적거려 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