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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Archives: 블루 노트
상황 발생
큰 일 났다. 딸아이가 파김치 맛을 알아버렸다. 내 연양갱도 보는 족족 뺏어먹더니 이제는 내 파김치까지! 그 옛날 훈장 선생님이 꿀단지를 숨겨두고 드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자물쇠로 잠궈둘잠가둘 수 있는 김치통을 발명해야겠다. 오늘 밤에도 파김치가 바람에 스치운다.
멜빌은 글을 썼다
일 하다가 짬을 내어 책을 읽는다. “열아홉 살 때 멜빌은 종종 다락방에 있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앞의 문장을 만나자 나는 ‘다락방’이 부러워진다. 내 유년에도 다락방이 있었으면 하며, 밑줄을 긋는다. ‘다락방에 있는 자신의 책상’까지 긋는다. 다음 순간 ‘다락방에 있는 자신의 책상 앞에‘까지 줄을 쳐야할 것 같다. 그렇지.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책상 앞으로 가야지, 하는 생각에서다. 다시 다음 순간, 책상 앞에 앉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다락방에 있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까지 밑줄을 연장한다. 이어서 다시 ‘글을‘이 눈에 들어오고, 제길, 결국 ‘썼다‘가 들어온다. 못 볼 걸 본 것이다. 결국 나는 ‘다락방에 있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까지 밑줄을 긋고 만다. 그리고 문장에서 살을 발라낸다. ‘멜빌은 글을 썼다.’ 그렇구나. 멜빌은 글을 썼구나. 그리고 나는 참담해진다.
어르신이 있는 풍경
광화문 네거리, 베레모를 쓴 구부정한 노인이 은빛 스텐 카트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카트에는 검은색 확성기가 실려 있다. 풍경이 기이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확성기에 붉은색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다. 죄 지은 자 많은 거리에서 천국과 지옥을 외치러 가시는 길인가. 어르신, 날도 쌀쌀한데 감기조심 하세요. 아무개 에스.
또 꼰대
그대를 사랑합니다, 를 보다가 옆에서 훌쩍거리는 고3대우 중1 딸에게, 지금 네가 느끼는 그런 감정을 파토스라고 하는 거야, 영어로는 pathos라고 쓰고 페이소스라고 읽기도 한단다, 라고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화석화 된 꼰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