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도 봄날은 간다

셔틀버스 타고 수영장에 간 내 조직원, 돌아올 시간이 물경 30분이 지났는데 아니 온다. 실종신고를 내야 하나. 아니면 몸값을 준비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수영장에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거기 수영장이죠? 우리 아들 왜 안 와요? 그걸 우리가 어찌 아나요? 안 그래요? 아, 그렇구나. 모르시겠구나. 저 그럼 오늘 셔틀버스는 정상 운행중인가요? 네. 아,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용가리치킨!

이게 어딜 갔지? 혹시 가출? 에이, 설마! 아내에게 전화해서 걱정시키고 본가와 처가에 전화해서 일을 크게 벌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수영장에 같이 다니는 친구 집에 전화한다. 우리 아들은 아직 안 왔는데 그집 아들은 왔나요. 뭐라구요. 오늘 수영장 안 갔다구요? 어라. 이거 사태가 심상치 아니하다. 가봐야지.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어. 무자식 상팔자야. 에이, 귀찮아 죽겠네.

어린이 보호구역 앞 과속방지턱을 과속으로 넘어 빨간 신호등을 파란 신호등이라고 간주하고 터보 제트 직렬 6기통 엔진 풀가동하여 전력 질주하여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마침내 드디어 수영장에 눈 두 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다. 역시 난 카레이서가 되었어야 했어. 그나저나 이게 대체 어딜 간거야? 궁시렁거리면서 셔틀버스 주차장에 간다. 저기 있네, 2호차. 아저씨들, 형님들, 우리 아들 못 봤어요? 버스에 올라가보슈. 저기 있네. 내 조직원! 너 거기서 뭐해?

사연인즉슨 친구가 안 와서 딴 날보다 좀 일찍 나와 버스에 올라타고 출발을 기다리다가 봄볕이 좋아 깜박 잠들었다가 버스가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수영장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잠이 깼단다. 내 팔자야! 하긴 사돈 남 말할 처지 아니다. 난 왕년에 술에 취해 지하철 2호선 타고 서울 두 바퀴도 돌았었는데 뭘!

아빠, 나 오늘 궁금한 게 있어.

김용규의 지식소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을 보면 알도가 11살 때부터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대장정을 시작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린 시절 내게 백과사전이 있었다면 나도 알도처럼 백과사전을 끼고 살며 드넓은 지식의 세계로 빠져들었을까.

“아빠, 나 오늘 궁금한 게 있어.” 누나 형아가 이런 저런 일로 밖으로 나가고 나면 혼자 남은 막내가 내게 와 말한다. 오호, 구래 구래, 내 새끼. 크게 될 놈이로고. 그래 무엇이 궁금하냐? 그러나 녀석은 가령 상대성이론이라든가 은유라든가 혁명이라든가 하는 이런 거창하고 고상하고 근사한 건 정녕 궁금해하는 법이 법다. 고작 시계, 곤충, 공룡 따위나 궁금해 할 뿐이다. 그나마 궁금한 게 있다는 것도 실은 사기고 속셈은 심심한데 저랑 놀자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이 궁금하다는 표제어을 백과사전에서 찾아 녀석에게 디민다. 어찌어찌 하여 언문은 간신히 깨쳤지만 이제 국산 나이로 일곱살 먹는 놈이 읽기는 무얼 읽겠는가. 녀석은 그림이나 몇 개 보다가 금방 시들해 지고 마는 것이다.

시골에서 놀다 1

시골에 사는 지인이 있어 내 아이 셋에다가 남의 아이 둘을 더 지참하고 며칠 여행을 다녀왔다.

도착 후 본 따위人─당선자도 人이라는데 나라고 人 못할 거 뭐있냐─의 제일성은 이랬다.

주의사항을 전달하겠다. 첫째,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늘이 두 쪽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공부하지 말 것. 둘째, 싸우지 말 것.

아이들은 과연 공부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나무에 그네나 매달아줄 요량으로 동네 산악용품점에서 자일을 10미터 사갔는데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라펠rappel까지 하게 되었다.

요즘은 都大體 ─ 이걸 굳이 한자로 표기하는 이유는 얼마 전에 이 말을 한자로 이렇게 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 뭘 쓸 수가 없다. 그러니 그만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