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8일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영화 한다. 엇그제 본 영화다. 이상하고 유치하고 재미 없는 영화다. 멍하니 또 본다. 지나가던, 다 커서 징그러운 막내가 묻는다.

다른 데는 뭐해?

왔다. 기회가 왔다. 왔다. 찬스가 왔다. 왔다. 카이로스가 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다른 거.

막내가 피식 웃는다. 이제 쌤쌤이다.

2월 24일

아내가 저녁 먹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신 뭔가를 먹어대는, 이제는 다 커서 징그러운 막내에게 묻는다.

아이고 우리 아들 뱃속에 뭐가 들었어?

막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내장.

아빠의 본분

나는 본의 아니게 아빠다. 귀찮지만, 아이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아빠는 뭐 좀 먹을 건데 넌 어떻게 할래?”

“난 짜파게티 먹을래.”

“그러자. 그럼 지금 두 개 끓인다.”

“지금?”

“응.”

“난 지금 씻을 건데…”

“그럼 씻고 나서 니가 끓여, 두 개.”

“그래.”

이로써 나는 배고픔도 해결하고, 귀찮음도 면하고, 아빠 노릇도 다 했다.

실신

나는 환장해본 경험은 몇 번 있지만 그게 다다. 환장을 넘어 실신까지 가본 적은 없다. 실신은 이를테면 내 괴로움을 과장하는 하나의 이미저리였을 뿐이다.

청소년기에는 어머니가 까무러치시는 걸 본적이 있다. 사지가 마비되고 눈동자가 돌아가던 어머니를 주무르던 기억이 난다. 우황청심환이라는 약의 존재를 그때 처음 알았다.

화장장에서 고인의 관이 화로로 들어갈 때 그걸 지켜보다가 힘없이 무너져내리던 어떤 누나 생각도 난다. 혀가 말려 기도를 막지 않도록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어제 딸아이가 학교에서 실신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의사는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병명을 진료확인서에 적어주었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명을 검색해본 아내는 그 약이 향정신성 약물이라고도 했고 수면제라고도 했다.

유튜브에서 산울림의 회상을 여러 번 들었다. 임지훈 버전으로도 듣고 <또하나의 약속>에 나온 여리목 버전으로도 들었다. 혼자 어쩔 수 없었다. 미운 건 오히려 나였다.

오늘의 카피

졸업식은 어수선했다.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고 어른들은 교실 뒤쪽에 아무렇게나 서 있었다. 교실 앞 모니터에서는 학교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행사가 중계되었다. 누군가 송사를 읽었고 누군가 답사를 읽었다. 누군가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몇몇 남학생들이 나와 “내 사랑 오 마이 러브 투 유”를 불렀다.

방송으로 중계되는 행사가 끝나고 각 교실에서는 2부 행사가 이어졌다. 담임 선생은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해서 졸업장과 앨범과 롤링페이퍼 따위를 나누어 주고 악수를 청했다. 학부모들은 대개는 핸드폰으로, 더러는 캠코더로 그 모습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담임은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라면서 제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무릎팍 도사’ 동영상도 하나 보여주었다.

끝으로 어느 학생이 편집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반 친구들 사진을 한 장 한 장 띄우고 거기에 그 아이와 관계된 글이 짧게 짧게 지나가는 평범한 영상이었다. 그걸 보며 아이들은 웃었다. 동영상 끝부분에 ‘안녕 친구들’, ‘안녕 3학년 9반’하는 문구가 떠올랐다. 아쉽지만 이제 졸업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안녕 중학교’라는 말이 보였다. 그 순간 아이들은 아, 하며 탄식을 했고, 나는 뭔가 뭉클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운동장에 나와 사진을 찍는 아이를 기다렸다가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