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엽이

June20_2004_two.jpg
─ 2004년 6월 20일, 동네 약수터에서
Nikon N50, Tamron 28-200mm 1:3.8-5.6f, Fuji Superia Autoauto 200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이미지프레스 이상엽/임재천/강제욱/노순택 글과 사진,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청어람미디어, 2004

물론 나도 떠나고 싶다. 문제는 들고 떠날 낡은 카메라가 없다는 것. 그러니 들고 떠날 낡은 카메라를 장만할 때까지는 안타깝지만 나는 떠나지 못한다. 사정이 대략 이와 같으니 책상앞에 죽치고 앉아서, 나여, 독후감 따위나 쓰면서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보자.

삼차원의 공간을 이차원에 가두려하다니. 대학 때 아르바이트해서 카메라 샀다고 자랑하는 친구에게 난 이 비슷한 말을 했던것 같으다. 왜 그랬을까. 계속해서 이어진 사진에 대한 이러저러한 나의 얘기에, 내 친구는 짜식이 보기와는 다르게 사진에도 관심이 있었네, 하며 강한 인상을 받는 듯 했지만, 내가 저 말을 했던 건 순전히 질투심 때문이었다. 그렇다. 난 카메라가 갖고 싶었다.

잠시 예전에 썼던 글을 찾아본다. 이렇다.

*****
내가 취업을 해서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제일 먼저 산 고가의 귀중품은 카메라다. Nikon FM2!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기종을 원했다. 그 후 많은 피사체를 찍었지만 어떤 피사체도 제대로 사랑할 줄을 몰랐던 나는 곧 사진 찍는 일을 그만 두었다. 그저 여행가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이제 결혼하여 가끔 볕 좋은 날 아이들을 찍어줄 뿐이다.

요즘 그대는 감히 이 카메라를 노리고 있다. 빌려 달라, 하고 아예 저렴한 가격에 팔라, 하기도 한다. 솔직히 그대가 정말 ‘예술’을 하겠다면 아예 기증할 의사도 있다. 아, 그대가 예술을 하겠다는 데 그깐 카메라 한 대가 문제겠는가. 아내 몰래 집문서를 내줄 용의도 있다. 아, 소주는 물론 그대가 사야한다. .

그렇다. 나는 그대를 지지한다. 그대의 욕망을 지지한다. 뭔가를 찍고 싶은 그대의 그 대책 없는 욕망을 나는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그 욕망은 한때는 나의 것이었다..

나에게 Nikon FM2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이렌느 야곱이 들고 있는 카메라와도 같다. 내가 이 고단하고 아름다운 삶의 여정에서 언젠가 ‘나와 절대적으로 같은, 나는 절대로 아닌, 또 다른 나인, 나의 분신을, 나의 아바타를’ 만나게 되면, 그때는 나도 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 이래도 내 카메라가 탐나는가?.

에라, 이, 순, 날…….
*****

원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 글인데 그 미니홈피는 개점휴업상태니 아까워서 여기 다시 옮겼다. 아까워 하는 까닭은 바로 이대목 때문이다. “나와 절대적으로 같은, 나는 절대로 아닌, 또 다른 나인, 나의 분신을, 나의 아바타를” 크. 죽인다. 아줌마, 여기 소주 일 병 더! 아참 지금은 술마시는 게 아니구나. 미안타. 아무튼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보면 이말이 무슨 뜻인지안다. 참고로 나는 이 영화의 DVD 타이틀을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구하지 못했다. 비디오는 나와 있다. 각설하고.

아주 오래 전부터 카메라가 갖고 싶었고, 쬐끔 오래 전에 카메라를 갖게 되었지만, 마구 찍는다고 사진이 나올 턱이 있나. 나는 곧 카메라를 잊었다. 내가 카메라에, 혹은 사진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이 따위넷 때문이다. 글만 올리면 영 심심한 것이고 해서 이미지라도 올리자니 카메라가 필요하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디카는 99년에 산 것이라 아주 고색창연하여 영 마음에 들지 않고, 그러다가 다시 쳐박아 두었던 FM2를 꺼내 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에 안나오던 사진이 이제와서 잘 나올 턱이 있나. 해서 이러저러한 사진 사이트도 구경해 보고, 브뢰송이니 카파니 신디 셔먼이니 만 레이니 하는 사진가들의 이름도 들어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진, 이게 갈수록 장난이 아닌거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집어 들게 된 책이 이 책이다.

책 내용은 이렇다. 오늘은 Leica M3 들고 이리로 떠나 사진 찍었다. 이 카메라 사진 정말 잘 나온다. 내일은 Rollei 35SE 들고 저리로 떠나 사진 찍었다. 이 카메라 사진 정말 잘 나온다. 그리고 말만 하면 안 믿을 테니 실제로 들고 떠난 낡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군데군데 인쇄되어 있다. 물론 사진 멋있다. 사진발은 그렇다 치고, 글발은 어떤가? 글쎄다. 건성건성 읽어서. 그냥 무난하달 밖에.

결론: 도대체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라니. 제목 너무 한다 싶다. 그렇지 않아도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 가슴 한 가득 구닥다리 감수성을 잔뜩 불러일으키는 ‘센치’한 제목이다. 또 하나 이 책의 문제는 이 책에 나오는 낡은 카메라를 모조리 가지고 싶게 만든다는 것. 하나 둘도 아니고, 한 두 푼도 아니고.

달려라~달려라~달려라~따위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네”
해서 트랙을 뛸 수가 없었네.
해서 걸었네. 한 손엔 우산을 다른 한 손엔 고독을 들고
나는 비속을 걸었네.
“이 비속을 걸어갈까요. 다정스런 너와 내가 손잡고”
그러나 다정하게 손잡을 사람이
비오는 밤의 공원의 트랙에는 없어
나는 혼자 걸었네. 혼자 비속을 걸었네.
하루 쯤 빼먹어도 누가 뭐라는 사람 없지만
하루 빼먹으면 지금까지 들인 노력이 아까워
나는 아무도 없는 공원의 트랙을 걸었네.
걸으며 생각했네.
이 생각 저 생각 많은 생각 했네.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했네.
산책이 왜 사색하기에 좋은지
알 것 같았네.

오늘은 비가 오다가 그쳤네
해서 트랙을 뛸 수가 있었네.
해서 뛰었네. 한 손엔 손수건을 다른 한 손엔 오기를 들고
나는 트랙을 뛰었네.
뛰면 노래고 뭐고 없네.
나는 헉헉거리고
나는 아무 생각이 없네.
뛰면 생각할 필요가 없네.

하니는 없마가 보고 싶으면
꾹참고 달렸네.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나는 오늘 알았네.
하니가 왜 달렸는지.
뛰면 아무 생각이 안나네.
그래서 그랬네. 하니는 슬프면 달렸네.

나도 달리네. 나도 뭐 모종의 슬픔은 있지만
내색하기엔 이제 뱃살 만큼 낫살도 먹었으므로
그냥 눌러 담고 사네.
그러니 내가 달리는 건 하니처럼 슬퍼서가 아니라
엄마가 보고 싶어 미칠 거 같아서가 아니라
살빼려고 그러는 거네.
아직도 뛸 때마다 뱃살이 출렁거리네.
해서 오늘 뛰었네. 뛰다가 죽는 줄 알았네.
힘들어서 아주 쓰러지는 줄 알았네.

그래도 끝까지 뛰었네.
뛰면 아무 생각 없으니
나처럼 잡생각 많은 인간에겐
최고의 처방이라네.
노래 하나 부르겠네.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