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사진사 32장면

최봉림 지음, <<세계 사진사 32장면>>, 디자인하우스, 2004(1판 2쇄)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역사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 남의 탓 먼저 하자면 어린 시절의 교육 때문이었을 것이다. 곰이 마늘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둥,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다는 둥,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산다는 둥, 소도는 죄짓고 도망가 숨기 좋은 곳이라는 둥 도통 이상한 소리만 해대니 역사란 참 현실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로구나, 했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 국사를 배우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 때 외운 지식들은 말 그대로 단편적인 것이어서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는 빈 도시락 속에서 젓가락 달그락거리듯 시끄럽게 달그락거릴 뿐 체계적인 거 하고는 영 거리가 멀다. 선죽교에서 충신 정몽주가 악의 무리에 의해 철퇴를 맞고 테러를 당해 죽었는데,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고, 무악대사가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들었다는 식이다. 내가 미친다.

가장 참담한 건 아직도 술에 취하거나 하면 “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이라는 척화비를 외운다거나 성삼문 박팽년 말고 사육신이 또 누가 있더라, 하는 따위로 술주정을 하게 되는 경우다. 추태도 이런 추태가 없다.

남의 탓은 이정도로 하고 내 탓을 하자면 다 내가 못난 탓이다. 그래도 국사는 제도 교육을 받는 동안 지겹도록 들어서 대충 까막눈은 면했다 쳐도 세계사는 특히 쥐약이다. 세계사는 재수하면서 학원에서 들은 게 전부다. 지금 기억나는 건 딱 하나나. 세계 3대 법전은? 함무라비 법전.(다른 건 모른다.) 요즘은 일본, 미국, 유럽 등의 역사책을 읽어볼까 생각중이다. 어느 세월에 그러겠냐만.

무슨 까닭인지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한국사 이야기 100장면, 세계사 이야기 100장면, 이런 류의 책 지금까지 딱 한 권도 읽어 본적이 없다. 아마도 이런 책은 정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세계 사진사 32장면 이 책도 우연히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을 펼치면, 중앙선(짝수쪽의 오른쪽과 홀수쪽의 왼쪽이 만나는 선)부근에 1년을 눈금하나로 나타내는 방식으로 하여 1820년부터 1960년까지 눈금이 그어져 있다. 보기 쉽게 하기 위하여 매 10년 마다는 긴 눈금을 그었고, 그 사이의 5년에 해당하는 눈금은 중간길이이다. 쉽게 ’30센티미터 자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32장의 사진이 제작된 해에는 굵은 선으로 표시했다. 폰트로 치면 볼드체다. 이 방법은 각 장에서 제시된 사진이 사진의 역사에서 어디쯤에 있는 건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혹은 그 사진이 사진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진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는 지 모르겠다. 아니면 편집자의 꿈보다 독자의 해몽이 좋은 건지도 모르고.

프랑스 사람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1765-1833)가 1816년에 “오목 렌즈가 달린 약 16cm의 정방형 암상자로 자기 방 창문 앞에 있는 가금장을 촬영”하여 ‘최초의 사진’을 만들었다하니 인류역사에 사진이 등장한지는 이제 190년이 조금 못되었다. 그 기간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찍은 그 많은 사진들 중에서 딱 32장만 골랐으니 그야 말로 ‘영재 중의 영재’들만 선발된 셈이다. 그 선발 기준을 평가할 만한 식견이 나에게는 없으므로 제대로된 선발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보먼트 뉴홀의 <<사진의 역사>>와 비교하며 읽었다. 저자도 뉴홀의 책을 자주 언급하거나 인용한다. 더불어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도 옆에 두면 좋다. 역사라는 게 하루밤에 읽어서 알게 되는 게 아니니 몇 번은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여담으로 내 인생의 32장면을 뽑아봐야겠다. 처음으로 외롭다고 생각한 날, 처음으로 몽정한 날, 처음으로 대가리 박은 날, 결혼한 날, 내 자식 태어난 날, 술먹고 처음 필름 끊긴 날, 뭐 찾아보면 많겠지.

무거운 단어들

나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무거워 조용히 귀를 닫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으로 무거운 단어들이 들어왔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불길한 단어들이 내 피부를 헤집고 들이닥쳤다 결국 내 몸은 그 무거운 단어들 때문에 납작해졌고 지금도 납작하다 이리하여 나는 납작하게 살게 되었다

이층집

언제든 양상추 같은 햇살이 방안 가득 번져나는 아이들 방이 있고, 그 방 창문을 열고 마당을 내려다보면 난닝구에 반바지만 입고 고무 호스로 마당에 물을 뿌리는 아빠[따위]의 모습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 어려서나 자라서나 이층집에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 내외가 가끔 꿈꾸는 풍경.

어슬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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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xus 500, the back portrait of ddawee(left), photographed by bomi
인생 뭐 있나. 밥이나 먹으러 가자구. 어슬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