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간막극

안 그래도 더운데, 더워죽겠는데
고참한테 욕 얻어 먹고 근무 나온 개미 한 마리가
106동에서 107동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꿀벌의 사체를 발견했다
아쉬운대로 이거라도 가져 가야지, 하면서
그는 즉시 꿀벌을 견인하기 시작했다
힘겹게 꿀벌 한 마리를 끌고가는 개미는 삶이 힘들었고
질질, 개미 한 마리에게 끌려가는 꿀벌은 죽어보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도중에 지나가던 건달 개미가 그 사체를 접수하려고 들었다
이건 또 뭐야, 야 반만 주라, 이 새끼가 너 어디 소속이야, 그러지 말고 말로 할 때 반 만 주라, 말로 안 하면 어쩔 건데…
그 소음 사이로 지나가는 역을 맡은 행인 1, 행인 2가 지나갔고
작품의 리얼러티을 높이기 위한 똥파리 1, 똥파리 2, 똥파리 3이 하늘을 날았다
오리지날 개미와 게스트 개미가 제 육신을 놓고 사투들 벌이고 있는 동안
죽은 꿀벌 한 마리는 그저 멍했다
그때 음향을 담당한 매미들, 일제히 울었다
잠시 그 꼴을 지켜보다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3-4호 라인 쪽으로 걸어가는
살아있는 인간 한 마리 역으로 캐스팅된 내가
무대 왼 편에서 등장해 무대 오른 편으로 퇴장했다

생각 메모

생각이 나를 자유케 하리라
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

그리고
당신 생각
은 해본 적도 없는
생각

그러나
당신을 생각하다가 내가 뒈지리라
는 생각

택시가 내 집에 가까이 왔다
는 생각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200페이지까지 가야겠다
는 생각

시집이 6,000원이면
비싼 거 아니냐
는 생각, 아니
내 생각은 그게 아니라
시집이 무슨 누드집도 아니고 비닐 포장해서 들쳐볼 수도 없게 출시한 건 너무 심하다
는 생각

그리고 이 느낌
지랄 같은

원래 세계

“너도 원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날으는 뚱띠 마녀 유바바가
치이로에게 한 말이다.
<박하사탕>에서 돌진해 오는 기차를 독대하고 서서
‘나 돌아갈래!’라고 절규했던 주인공이 그토록 처절하게 돌아가고 싶었던 곳도
아마 “원래 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원래 세계”이다.
치이로가 원래 세계가 아닌 세계로 갈 수 있었던 건 상상력을 통해서 였고
박하사탕의 주인공이 돌아갈 곳이 없었던 건 그가 단 한 순간도 원래 세계를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가 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