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간막극

안 그래도 더운데, 더워죽겠는데
고참한테 욕 얻어 먹고 근무 나온 개미 한 마리가
106동에서 107동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꿀벌의 사체를 발견했다
아쉬운대로 이거라도 가져 가야지, 하면서
그는 즉시 꿀벌을 견인하기 시작했다
힘겹게 꿀벌 한 마리를 끌고가는 개미는 삶이 힘들었고
질질, 개미 한 마리에게 끌려가는 꿀벌은 죽어보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도중에 지나가던 건달 개미가 그 사체를 접수하려고 들었다
이건 또 뭐야, 야 반만 주라, 이 새끼가 너 어디 소속이야, 그러지 말고 말로 할 때 반 만 주라, 말로 안 하면 어쩔 건데…
그 소음 사이로 지나가는 역을 맡은 행인 1, 행인 2가 지나갔고
작품의 리얼러티을 높이기 위한 똥파리 1, 똥파리 2, 똥파리 3이 하늘을 날았다
오리지날 개미와 게스트 개미가 제 육신을 놓고 사투들 벌이고 있는 동안
죽은 꿀벌 한 마리는 그저 멍했다
그때 음향을 담당한 매미들, 일제히 울었다
잠시 그 꼴을 지켜보다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3-4호 라인 쪽으로 걸어가는
살아있는 인간 한 마리 역으로 캐스팅된 내가
무대 왼 편에서 등장해 무대 오른 편으로 퇴장했다

Posted in 블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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